2018 여름 여행 여덟 번째 이야기
이번 숙소는 비지니스호텔로 레스토랑에서 인민폐15원을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 맛있으면 맛있어서 잘 먹고, 맛없으면 배라도 채우려고 잘 먹는 우리 부부는 각각 이만큼이나 떠서 먹고 있는데, 열 살짜리 까탈도령은 입맛이 없다, 먹을 게 없다 궁시렁대며 개미 코딱지만큼 먹더니 그만 먹겠단다. 여기보다 한참 높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도 트래킹을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시작이 불길하다.
관광객센터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야해서 일단 거기까지는 차를 몰고 가는데... 역시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많은 나라지만, 지금껏 사람많은 곳을 잘도 피해서 다녔는데 이번엔 아니구나 싶다.
센터로 올라가는 길의 풍경도 충분히 멋진데, 그 높은 곳에 대체 뭐가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걸까? 우리가 과연 투덜이 열 살 꼬마를 데리고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해발 4천미터 고산지대에서는 필수인 모자(아들놈꺼)를 두고 왔다는 걸 알고부터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한다.
멀리서 찍어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저 에스컬레이터에 꽉 찬 사람들을 보시라! 오늘 또 기다리는 게 일이겠구만.
사람도 많지만, 버스도 많다. 생각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관리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한 시간쯤 걸려 버스 종점에 거의 도착할 때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칠거야, 아니면 보슬비가 좀 오다 말거야...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고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기만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등산복 위에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1회용 비옷을 입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동안은 고산반응이 별로 없던 아들 녀석이 머리가 아프다, 토할 것 같다며 영 상태가 좋지 않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리는 아들에게 잔뜩 준비해 간 산소를 들이키게 하고, 포도당을 먹이고, 괜찮을거다 달랬다. 하지만 급기야 닭똥같은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못 가겠다는데, 도저히 더 이상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들뿐 아니라 나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 트래킹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비도 오는데 숙소에서 푹 쉬어보자’ 맘먹는다.
바로 그 때, 결연한 표정의 남편이 자기는 이미 다녀온 곳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내려가는건 너무 아까우니 당신 혼자라도 올라갔다 오라며, 손에 생수 한 병과 비상식량, 두둑한 현금을 쥐어준다. 자기는 아들을 데리고 내려가 돌볼테니 걱정말라면서. 순간 멍해진 나는 어떻게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한번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몸은 이미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머리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냐고 난리가 났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도, 우리 아들처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올라가는 사람들은 길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다. 길 옆으로 힘차게 흐르는 계곡 물을 보며, 내가 가는 방향은 반대지만 내 몸이 다다를 수 있는 관성의 한계까지 가보자란 맘을 먹어 본다.
버스에서 내린 후, 10분 정도를 걷다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올라간다. 종점 앞에 호텔에서 찍어왔던 안내판과 비슷한 표지판이 보인다. 트래킹의 최종 목적지는 해발 4,700m에 위치한 우써하이(五色海 오색해 : 다섯 가지 색깔의 호수), 만약에 거기까지 못 간다면 두번째 목표는 그보다 낮은 뉴나이하이(牛奶海 우유해 : 우유 색깔의 호수 *왼쪽 사진에 있는 실제 안내판에 五色海로 잘못 적혀 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내 두 다리에 의지해야 한다. 그것도 해발 4천킬로가 넘는고원에서 5km를 올라갔다 다시 5km를 내려오는 긴 여정을 말이다. 남편은 내려올 때는 말을 타고 내려올 수 있으니 걱정말고 체력 배분을 잘 해서 올라가기만 하라고, 올라가다가 고산반응이 와서 너무 힘들면 포기하고 바로 내려오라고 했다.
저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곳엔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는 희귀동물들이 많다. 그 중 하나인 ‘히말라야 들양’. 날씨가 좋은 날 오면 가끔 볼 수도 있다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와 쟤들도 어디 숨어서 비를 피하고 있을테니 보기는 글렀다.
비는 오고 사람은 많고 길은 좁아서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올라간다. 고산지대에서의 산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심장박동을 마구마구 빨라지게 한다. 아이폰 워치에 켜 둔 앱에서 심박수가 160BPM을 넘을 때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버릴 것처럼 힘이 들었다.
비가 와서 흙탕물 천지인 바닥을 보며 걷다 고개를 드니, 잠시 서서 쉬고 힘들어하며 산소를 들이키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준비해 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잠시 서서 남편이 챙겨 준 군용식량을 꺼내 먹는다. 3킬로는 걸어 온 것 같은데, 시계는 내게 1.5킬로 밖에 안 올라왔단다ㅜㅜ 아... 내가 정말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힘이 들수록 자꾸 심통이 난다. 또 허풍떠는거 아니냐? 내 어디 끝까지 올라가서 확인해 볼테다, 호수색이 정말 니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유색인지, 다섯가지 색인지. 아니기만 해봐라. 씩씩거리며 코끼리같은 다리를 한걸음 한걸음 뗀다. 오로지 힘이 되어 주는 건, 주변의 멋진 풍경들과 가끔씩 수신되는 남편의 걱정과 격려가 함께인 문자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손님을 태우지도 않은 빈 말들이 서둘러 산을 내려가 버린다. 이런저런 모습을 다 담기엔 에너지도 부족하고, 성의도 부족하고, 핸드폰 배터리도 부족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발이 푹 빠질듯한 진흙, 한무더기씩 모여있는 말똥, 미끄러워보이는 디딤돌을 피해 한걸음 한걸음을 떼며 몸은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지만, 점점 정신이 맑아진다. 그리고 혼자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는다.
2시면 무조건 내려오기 시작해야한다는 남편의 말이 생각나 신데렐라처럼 시계를 본다. 시간은 다 되어 가고 거리는 아직 1.5킬로나 남았다. 어디까지 갔냐는 남편의 문자에 ‘나 계속 올라가 보고 싶어’라는 답을 하고 계속 걷는다.
2시간 20여분만에 드디어 도착한 우유호수! 거봐, 우유색은 아니잖아. 거짓말쟁이들! 근데 이쁘긴 하다. 저 호수의 색깔도. 여기까지 힘내서 올라온 내 다리도. 저질 체력인 주제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내 정신력도.
마지막 최종 도착지인 오색호수를 갈까말까 생각도 하기 전에 잠시 멈췄던 비가 마구 쏟아진다. 꼭 누군가 ‘수고했다, 녀석! 오늘은 여기까지면 됐다. 담에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다시 오색호수 보러 오려므나’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내려가는 길은 올라 온 속도보다는 빠르다. 중도포기자들이 길을 비워주고, 한번 왔던 길이니 아무래도 가속이 붙는다. 그래도 비가 오는 미끄러운 내리막길이니 조심조심, 풍경은 보지도 않고 앞쪽에 유능한 길잡이가 생기면 그 사람의 신발에만 집중해서 쫓아 내려온다. 신중한 뉴발란스, 흙탕물이 많이 튀겼지만 적절한 디딤돌을 잘 골라 내려가는 아디다스, 무릎을 조심하려는듯 옆으로 천천히 한걸음씩 딛는 고급 등산화.
다시 디젤냄새 지독한 롤러코스터에 버금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또 다시 새치기와 밀치기의 카오스를 거쳐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두 남자가 저쪽에서 두 팔을 벌리고 내쪽으로 뛰어온다. 마음속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뭔가가 툭하고 건드려진다. 이래서 무언가를 향한 도전이 필요한가보다, 이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오늘 저녁은 마오뉴훠꿔(牦牛火锅 야크고기 샤브샤브), 식당은 제법 유명하고 비싼 곳을 골랐다. 그리고 탕은 각종 버섯이 들어 간 맵지 않은 것과 고추기름이 잔뜩 들어 간 매운 것이 반반 섞인 것(鸳鸯锅底)으로 선택
요거요거 아주 물건이다. 전채로 아들놈이 시킨 떡인데 우리나라 인절미랑 맛이 비슷한데다 겉은 살짝 구워 바삭하고, 위에 흑설탕을 녹여 묻힌 다음 그 위에 콩가루를 뿌렸다. 훠꿔보다 이 녀석이 오늘 저녁의 주인공!
훠꿔에 먹는 소고기를 이렇게 두껍게 덩어리로 내는 곳은 처음봤다. 훠꿔에 포크와 나이프도 같이 세팅해 주는 것도 역시 처음봤고. 서양 스테이크처럼 먹으라는 얘기다. 그래서 포도주도 파는 모양이다. 맛은? 역시 훠꿔는 얇게 썬 고기가 국물맛을 머금고 있는 게 훨씬 맛있는듯.
모든 재료들이 탕속으로 다 들어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서로 부대끼고 섞여 가며 그렇게 탕속에서 국물을 빨아들이며 맛있게 익어간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인생의 맛이 배는 것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