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놀타 X-700. 코닥 울트라맥스 400.
쉰세 번째 순간들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 바로 확인할 수가 없어서 36장을 빨리 찍고, 확인하고 싶은 초조함이 생긴다.
사진 맡기는 당일에는 사진관 가는 발걸음이 설렌다. 현상 기다리는 시간에는 초조함은 사라지고, 여유롭다.
사진 맡기면 보통 1시간 걸리는데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자유공원 1시간 걷는다.
걷다가 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전화 안 받는데 뭐해?"
"나 집 아니야. 사진 맡기러 왔어. 1시간 걸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사진관에 사진 맡기는 장면이 떠올랐다.
뭔가 사진 찍고, 사진 맡기고, 기다리는 내 모습이 영화 같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USB에 jpg 파일을 넣고 사진을 인화하면, 영화 같지 않은데 필름 한 통을 들고, 사진 맡기러 왔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필름 사진을 찍고, 맡길 때 일어나는 감정은 초조함, 설렘, 기쁨.
필름카메라 처럼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카는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울 수 있다. 쉽고, 빠르다.
카톡 메시지 같다고 해야될까? 메시지 보내면 바로 확인 가능하고, 1이 없어지나 안 없어지나 집착하게 되는.
필름카메라는 바로 확인이 안되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울 수 없다. 어렵고, 느리다.
카톡 메시지 말고, 며칠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편지를 쓰고 싶다. 내 생각을 진심으로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2020년 7월 25일 하늘 정말 끝내줬다.
하늘이 예쁘면, 등산을 하는 습관이 있다. 예쁜 하늘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1년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 장소는 홍예문.
2016, 2017, 2018, 2019, 2020. 이제 5번 찍었다.
1차 장어 먹고, 스크린 야구장 가는 길에 배다리 마을 쉼터에서 맥주 한 캔씩.
진짜 조용한 동네. 마음이 편안해진다.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따라 했는데 실패. 풍선 불기가 너무 힘들다.
옛날 50 원 덴버껌 씹었으면, 쉽게 불었을 텐데 요즘 풍선껌은 잘 안 불어진다.
내년에 능소화 피는 시기에 서촌에서 다시 찍기로.
누나가 아기를 낳아서 조리원 퇴원하는 날 꽃 선물을 했다. 얼마냐고요? 14,000 원. 단골 꽃집이 이래서 좋아.
서울 삼각지에 있는 원대구탕. 1인분 (10,000 원)
서울 사는 친구한테 원대구탕에 소주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거 때문에 일부러 서울 상경했다. 진짜 맛집.
먹고 나오면서, 비 오는 대구탕 골목길 찍으려고 했는데 소주 2병 먹으니깐,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기 귀찮아서 안 찍었다.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티모시 샬라메 한 장면 따라잡기.
뉴욕에 티모시 샬라메가 있다면, 동인천에 조댕이 있다. 엽떼요?
책방모도 앞에서 책 읽는 컨셉 사진 찍었다. 다리를 일자로 쭉 필걸. 다리가 너무 두껍게 나왔네.
책 이름은 아무튼, 산.
친구가 캠핑용품점에서 막걸리 잔을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친구 와이프도 조댕 오빠랑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추천했다고.
어쩜 이렇게 딱 내 스타일을 아는지. 가방에 걸고, 등산해야겠다.
인천 구월동에 있는 독립서점.
남동구, 연수구는 3만 원 이상 무료 책 배달 서비스.
직원으로 "후추"라는 예쁜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보러 갔는데, 출근을 안 했다.. 아 다음에 또 가야지.
커피잔 들고, 사진 찍었으면 어울렸을까? 아니야, 난 막걸리 잔이 잘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