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플레이리스트에 음악이 추가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반가웠던 만남이 아니었을까.
바로 일본에서는 이미 대히트를 치고 유명할 대로 유명해진 아티스트, ‘요네즈 켄시(米津玄師)’ 이야기다.
비록 내가 알게 된 지는 이제 고작 1년 정도밖에 안됐지만 단연코 플레이리스트에 붙박이로 붙어버릴 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아티스트다.
처음 ‘레몬(Lemon)’ 을 들었을 때는 어쩌면 밋밋하게 들릴 수도 있을 정도로 담백한 보컬에 강한 팝적인 색채가 더해져 원 히트 원더 정도의 음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멜로디와 리듬에서 오는 힘이 좋고 소리를 배합하는 느낌이 좋아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도중 ‘카나리아(カナリ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서 보게 됐다.
사실 찾아본 원래 이유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상을 보고 싶은 기대감이 더 큰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엔 눈보다 귀가 더 반응을 했던가, 사실 영상 보단 음악이 더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뮤직비디오라는 게 영상보다는 음악이 주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기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사운드 구성도 단출하지만 그 적은 사운드를 배합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사운드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건반에서 시작해 베이스와 드럼을 더하고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 현악 사운드를 더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어떨 때는 건반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어떨 때는 현악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어떨 때는 서로 보듬어 주기도 하면서 매우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이런 음악을 듣고 나니 다른 음악을 더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느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음악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소리 하나하나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 공들인 흔적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리듬을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한데, 메이저로 올라오기 전에 서브컬처에서 활동했던 이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기본이 되는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을 다이나믹하게 가져갈 줄 알면서도 그 사이 빈 공간들을 다른 악기의 리듬으로 보완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거의 모든 사운드에 각자의 리듬을 부여하면서 음악을 다채롭게 만들지만 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것이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곡 중 하나는 ‘감전(感電)’ (영제 ’Kanden’)이라는 곡이다.
다루는 사운드만 해도 드럼, 베이스, 건반, 브라스, 클래식 사운드, 일렉기타, 각종 신디사이저 및 전자음에 개, 고양이 소리까지 어마어마한 폭을 자랑한다.
도입부를 보면 마치 하나의 서커스를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강렬한 브라스 사운드를 시작으로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펑키한 메인 리듬을 소개하는 와중 쇼의 시작을 알리듯이 여러 fx들을 배치하면서 진부함을 덜어준다.
그렇게 베이스와 드럼과 함께 기타가 큰 틀을 마련해주고 첫 벌스의 16마디를 8마디씩 나누었을 때, 각 8마디의 말미에 기타와 베이스가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 패턴이 마무리된다.
그런 패턴 직후에 브라스 라인이 자연스럽게 타고 들어와 또 다른 멜로디 라인과 리듬을 소개하고 그것이 지나가면 다시 기타가 메인 리듬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브라스의 말을 받아 대답하는 듯한 느낌의 연주가 들어온다.
그러고 나면 질 세라 높은 음역대의 건반이 바로 이어받아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위에 브라스가 얹어지면서 하나의 조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과정만 봐도 드럼, 베이스, 기타, 브라스, 건반을 비롯한 모든 사운드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섞인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이 음악을 들을 가치를 충분히 전해준 것 같다.
또 이런 점이 느껴진 곡은 ‘틀린 그림 찾기(まちがいさがし)’ (영제 ‘Machigai Sagashi’)라는 곡이다.
이 곡은 자연적인 새소리와 클래식 기타 소리로 시작해 클래식 현악, 건반, 일렉기타, 어쿠스틱 드럼이 더해지고 거기에 전자음과 전자드럼, 보컬 fx까지 더해지면서 이질적일 것만 같은 소리들을 하나로 조립해낸 탁월한 성과를 이뤄냈다.
중요한 건 아까도 말했지만 다양한 사운드를 사용한 것뿐만 아니라 그 모든 사운드가 각자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새소리와 클래식 기타의 메인 테마로 시작한 뒤, 시곗바늘 소리로 메인 리듬을 만든다.
거기에 보컬이 얹히고 뒤이어 첼로가 얹히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후렴이 온다.
후렴에서는 기본적으로 클래식 기타의 리듬은 유지되고 높은 성부에 현악 사운드 두 개 정도가 각자의 멜로디와 리듬 라인을 가지고 얹힌다.
그리고 본격적인 리듬을 베이스와 드럼이 채우게 되는데, 정확한 소리의 명칭은 몰라도 전자드럼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가 들어온다.
그러면서 부드러운 클래식 기타, 현악기와 비교되는 비교적 거친 드럼 사운드가 들어오고 심지어 베이스 드럼 노트도 잘게 쪼개 엇박으로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리듬 성부를 하나의 역할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동시에 스스로가 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지난 후렴 뒤에는 클래식 기타 대신 현악기와 전자 fx가 보컬 멜로디 라인과 함께 메인 테마를 구축하고 어쿠스틱 드럼이 함께 들어온다.
이번에는 메인 리듬은 시계 초침 소리가 잡아주는 대신 현악기가 각 8마디의 첫 리듬을 이끌어주고 그것을 이어받아 첫 4마디의 말미는 스네어 드럼의 마칭으로 포인트를 잡아주고 8마디 말미에는 전자음으로 그 리듬과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두 번째 후렴이 지나 브릿지로 들어갈 즈음에는 클래식 기타와 어쿠스틱 드럼, 전자음으로 기존에 사용된 테마를 새로 조합하고 뒤이어 그 거친 질감을 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들의 부드러운 소리로 감싸면서 또 다른 분위기의 고조를 만들어낸다.
이렇듯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들의 조화를 이루어낼 뿐만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의 독특한 리듬을 가지면서 자기 자신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음악을 구성해 낸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내재적인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에, 켄시의 음악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의 음악을 계속해서 듣게 만드는 원동력을 지닌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내재적인 측면은 첫 감상부터 단박에 알아차리기 쉬운 지점들은 아니지만 분명 그런 요소들이 그의 음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그의 음악은 그런 개별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총체적인 음악 또한 아름답기 때문에 개별 요소들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풍부한 음악이다.
특히나 레몬과 카나리아 같은 발라드 곡에서는 특유의 따뜻함이 묻어난다.
건반과 현악기의 부드러움을 통해 듣는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곡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감동을 선사한다.
‘바다의 유령(海の幽霊)’ (영제 ‘Spirit Of the Sea)에서는 건반과 베이스 사운드를 기반으로 걷잡을 수 없는 깊이감과 웅장함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감전’처럼 폭넓은 사운드로 재주넘는 서커스를 선보이기도 하고, ‘해바라기(ひまわり)’ (영제 ‘Himawari’)처럼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역동적인 앙상블만으로도 곡 전체의 리듬을 가지고 노는 곡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그의 음악을 계속 듣다 보면 내재적인 관점에서부터 총체적인 관점까지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소리들을 쌓아가는지,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듣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그의 내재적인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곡은 많은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단연코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의 ost 인 ‘바다의 유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곡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공간으로써의 음악’ 또는 ‘음악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곡은 조금 유별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게, 멜로디 테마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초반부는 건반의 반주와 목소리만으로 곡을 이끌어 가는 대신, 그 빈 공간에 전자 비트 사운드를 더하고 약간의 공명을 가진 스네어 드럼 사운드를 사용하면서 마치 고요한 바닷속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멜로디가 상대적으로 약한 대신 베이스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특히 후렴구에서 초저음의 베이스를 활용한 사운드 메이킹이 인상 깊다.
마치 심해의 고동소리 혹은 고래의 소리 같은 깊고, 압도적인 중압감을 가진 소리를 표현하며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형상화하고 우리가 그것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그리고 후렴의 도입부에서 활용한 코러스는 파도가 세차게 밀려오듯이 우리를 압도하는데, 이는 우리를 넓고 광활했던 공명의 바다에서 깊고 무한한 심해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후렴에 사용된 신디사이저나 클래식 현악기, 브라스 사운드는 어떤 특정한 멜로디 라인을 잡아준다기보다는 그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각종 생물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한 사운드처럼 들린다.
이렇듯 ‘바다의 유령’은 그 제목을 그대로 음악으로써 형상화 한 음악처럼 여겨진다.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사운드를 직조했고, 동시에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사운드 메이킹을 탁월하게 해낸 것이다.
켄시의 필모그래피를 쭉 따라서 듣다 보니, 이렇게 내재적으로 유기적인 음악적 경향은 위에서 말한 곡들이 수록된 앨범인 정규 5집, ‘Stray Sheep’에서 완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이유를 '소통'이라는 키워드에서 찾고 싶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카나리아'와 관련된 켄시의 인터뷰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Stray Sheep’의 작업 과정에서 그 스스로가 이룩한 성장이 '협업'에서 올 수 있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보았던 것 같다.
서브컬처에서 활동하면서 1인 위주의 작업을 해 오다가 메이저로 올라오면서 필연적인 협업이 이루어졌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밴드 사운드 위주로 다뤄오던 그의 색깔을 변화시키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소통'이다.
협업이라는 것이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듯, 이 폭넓은 사운드들이 그가 경험했던 소통과 협업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그 경험 자체가 음악화된 것이다.
'소통을 위한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을 통한 소통이라고 하면, 가사와 멜로디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하겠지만 그 본질은 소리를 통한 소통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소리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통의 창구가 다양해진다는 것이고, 소리 요소들이 각기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소통의 주체들이 말하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조화롭게 어울린다면 섬세한 메시지들이 조화롭게 모여서 만든 총체적인 메시지는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음악이 흘러가는 동안 그 속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울리는 것, 그것이 그의 음악으로 하여금 단순히 흘려듣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듣더라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이것은 곧 감상자에 대한 존중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음악적 신념도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듣는 이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이러한 음악적 태도와 방법론은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사실 음악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작업환경에서 음악을 만드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끊임없이 감상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향해 섬세하게 사운드를 쌓아 나가며 그것이 듣는 이에게 어떤 경험을 불러일으킬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흔적이 엿보일 때마다 어떤 음악이든 상관없이 요네즈 켄시라는 그 사람 자체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그의 음악을 더욱 집중하여 듣고 그렇게 건네어 오는 소통의 손길을 기꺼이 잡아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이러한 감동을 주는 음악가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 또한 그가 특별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국 나는 음악에 대해서, 기술적인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아티스트 스스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또한 조명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별히 켄시의 그것에서 느껴지는 타자에 대한 존중과 손길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 현대 사회에도 필요한 가치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요네즈 켄시를 감히 '현대음악의 가능성'이라고 칭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음악가를 만나 앞으로 그의 행보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P.S. 위에서 언급한 곡들 외에는 ‘Loser’ , ‘Santa Maria’, ‘쏘아 올린 불꽃(打上花火)’ (영제 'Uchiagehanabi'), ‘Pale Blue’ 정도를 더 추천하고 싶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Loser’는 기타와 드럼, 베이스의 리듬을 그가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주목하기 좋은 곡이다.
‘Santa Maria’는 다른 발라드곡과 비슷하게 따뜻하게 감싸는 바이올린과 멜로디가 일품이다.
특히나 후렴으로 들어가는 바이올린 라인이 인상적이다.
‘쏘아 올린 불꽃’은 음악으로 밤하늘에 별을 수놓는 음악이다.
개인적으로는 ‘DAOKO’와 함께한 버전보다는 혼자 부른 버전이 더 좋다.
‘Pale Blue’ 같은 경우는 다양한 현악기의 조화가 두드러지는데, 특히나 브릿지에서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트랜지션은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