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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n Lee Apr 21. 2024

[미학적 단상]사랑이 뭘까?

허상 혹은 구원

1.


사랑이 남기고 간 자리가 그토록 마르지 않는 건,

사랑이 사랑다워서가 아니라, 사랑을 사랑으로 남기려는

당신의 심정이 아직 젖은 까닭이다.


사랑이 무릎을 꺾고 훌쩍 떠나버린 시간마저 계속 붙들며 끝내 완성하려는 비루한 심장.


사랑이 사랑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허상에 걸려 넘어지기를 자처한 당신의 그 착한 마음이 다시, 사랑을 일으켜 세운다. 세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뿐,


허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사랑은 유한하나 외로움을 채워 줄 사랑이라는 과잉의 이미지가 욕망이라는 인류의 신이 되어 영원토록 사랑을 꿈꾸게 한다.





ㅡㅡㅡㅡㅡ


2.


과연 인간은 존재가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보통은 성적인 결합을 통해,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잊으려고 기대한다.


사랑의 황홀경은 자신의 자아를 타인의 자아 가운데 흡수할 수 있을때.. 그렇게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라캉은 모든 타자와 자아와의 관계는 결코 그 가운데서도 홀로 있음을 극복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기의 욕망을 해결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상상계와 타자의 실제계 상징계..


사랑의 엑스터시의 욕망이 끝나고나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 뒤에 오는 허무감은 홀로 있음의 외로움의 그것의 수십배다.

이러한 분리의 상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 자아가 타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충족한 후에


사랑의 경험을 하고 성적 결합을 한다고 해서 외로움을 채워 내적자아의 충만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빈공간의 외로움.

신도 인간의 홀로있음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사랑의 엑스터시 이후에 밀려드는 내적 자아의 빈 공간은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내적 자아로서 나.라는 고유한 내가 될 수 있도록 그것을 도와주고 지켜봐줄 수 있는 것. 그것이 타자가 채워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는..


...



3.


내가 안다고 여겼던 외로움보다

더 짙은 외로움,

내가 알던 사랑보다

더 찬란한 사랑이 있음을


몰랐던 깊이와

예전과는 또다른 성분과 질감으로 다가오는

한없는 존재의 경이로움이

나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알지만 결국 많은 것을 모른다.


4.


이성과 감성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꽃과 잎 사이

바람과 구름 사이

낙엽과 가을 사이

하늘과 맹세 사이

당신과 나 사이의

관여할 수 없는 그 틈 사이의 외로움을

우리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새벽 외로움에 깨어 심장으로부터 역류하는 습기가 망막을 어지럽히면 커피를 마시자. 조금 달달하게 설탕도 넣어보자.

신이 나를 방치하는듯한 날엔 커피라는 악마가 욕망에 들끓는 우리의 심장을 구원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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