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거리
오랜만에 마주친 얼굴이었다. 거리라 부를 만큼 먼 사이도, 안부를 묻기엔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침묵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 눈빛이 잠시 머물렀다. 그건 대화라고 부르기엔 짧고 침묵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지나간 순간이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말이라는 형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감정은 너무 오래되었고,
너무 조용했고,
이미 말해질 수 없을만큼 변화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말이 필요한 순간보다 말을 보류해야 했던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확신 없이 말했던 문장은 금세 휘발되었지만 말하지 않고 지나친 순간은 형체 없는 감정으로 내 감각에 눅진하게 남았다.
말하지 않았다는 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감정은 아직 해상도가 높지 않은 상태로, 그러나 여전히 진행형의 감정으로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그 거리의 끝자락에서 당신의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정확한 얼굴보다 잠시 흘끗 본 손의 동작이나 머뭇거리는 발끝이 더 오래 남는.
그날 이후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말을 고르느라 침묵했던 그 순간이 내겐 어떤 감정보다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건 말하지 않음으로서만 유지될 수 있었던 거리.
그리고 그 거리 위에서 나는 당신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그 침묵의 감도 속에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