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학적 단상]진단 너머의 미학: 신뢰가 쌓이는 방식

by 비안리 Viann Lee

닥터 교수님의 설명은 하나의 단정적 진단이라기보다 차분하게 구조를 세워가는 ‘논의’에 가까웠다.

2박 3일 동안 여러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문제의 진원지를 찾기 위한 1안과 2안의 전략을 명확히 구분해 제시해주셨다.

가능한 돌발 상황과 응급 시나리오까지 하나씩 검토해주는 모습 속에서 전문성 이상의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호자의 자리에서 깊이 체감했다. 성심에 감사했다.


사실 수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큰 통증으로 입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가 의심하던 지점에서 실제 문제가 발견되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순간이란 늘 안심과 책임이 동시에 밀려드는 법이다.

뒤늦게라도 발견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가라앉힌다.


영양제 링거를 맞고 누워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늘 그랬듯 주변을 먼저 배려했다.

소녀 같은 순수함과 환한 표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였다.

어떤 얼굴은 말보다 먼저 공간을 밝히고 어떤 표정은 설명보다 깊은 신뢰를 만든다.

나는 그 미세한 빛의 움직임 안에서 관계의 미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배운다.


나를 귀하게 여기며 키워준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돌려드릴 차례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또렷했다.

가족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것은 정서적 신뢰와 투명한 소통이라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그 태도는 의료 현장이든, 조직이든, 어떤 인간관계든 동일하게 작동한다.


금식이 끝났다는 말에 “엄마, 빵 사다드릴까?” 하고 조심스레 속삭였더니

언제 나타났는지 간호사님이 “빵은 아직 안 됩니다” 하며 단호하게 제지하신다.

작은 웃음이 나는 장면이었다. 규칙을 지키는 일이 결국 치유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엄마, 몰래 먹을까?)


삶은 위기의 순간에 아름다움의 본질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은 대단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려는 태도 안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타르트 오 쇼콜라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복원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새삼 느낀 일정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