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에서 시작된 나의 각성
투석실 간호사 시절이었다.
75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투석실에 처음 오셨다. 평소대로 신규 기본 피검사를 받으셨는데, 결과는 C형 간염 보균자.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셨다. 그도 그럴 것이, C형 간염 검사는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검사를 받을 일이 없다.
투석실은 혈액을 다루는 곳이다. 환자들의 피를 기계로 빼내어 깨끗하게 걸러낸 뒤 다시 몸속으로 돌려보낸다. 한 번 투석할 때마다 수 리터의 혈액이 기계를 통과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석실은 감염관리가 생명이다. 특히 혈액에 관한 사항에 예민하다. 새로운 환자가 오면 투석 전 피검사를 상세하게 한다. B형 간염, C형 간염, HIV, 매독까지. 혈액매개 감염병은 전부 확인한다.
내 피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은 환자 본인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직원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존 환자들도 매달 다른 종류의 감염성 피검사를 돌아가며 받는다.
의사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몸에 문신 있나요?"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소매를 걷어올리셨다. 오른팔에 흐릿한 글씨 몇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젊은 시절의 흔적이었다.
나는 평소에 문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 순간까지 생각도 못했다.
왜 의사가 C형 간염 진단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문신에 대해 물어보는지. 문신과 혈액매개 감염이 그렇게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사실 원리는 간단했다. C형 간염은 혈액감염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세대의 문신은 지금과 달랐다. 바늘 하나로 여러 명을 돌려가며 문신을 시행했다. 소독과 멸균 등에 대한 개념 자체가 의사가 아니고서야 자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C형 간염 보균자인 줄 모르고 살아오셨다. 증상이 전혀 없었으니. C형간염은 운이 좋으면 이렇게 발현 없이 보균자로만 살거나 결국 만성 간염 혹은 암으로 발전까지 해야 겨우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몇 개월 후, 만나게 된 남자친구는 과거에 타투이스트였다.
어느 날 대화 중에 혈액감염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가 한 말에 나는 또 한 번 충격받았다.
" C형 간염? 그게 뭐야?"
타투를 배우면서 혈액매개 감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C형 간염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것이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도, 타투를 할때 위생을 신경써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의사는 C형 간염 환자를 보면 단번에 문신 여부를 묻는데, 정작 타투를 하는 사람들은 혈액감염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블로그에 이 관련 글을 쓴 것이 2020년이다. 그것이 내 생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25년, 드디어 타투가 합법화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순간, 내 마음속에 불이 켜졌다.
이제는 더 이상 음지에 숨어있는 불법적인 행위가 아니다. 당당한 직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전문성과 안전성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투석실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내 남자친구의 놀란 표정도.
더 이상은 안 된다.
나는 간호사로서 투석실과 마취과에서 일했다. 보건관리자로도 경험이 있다.
매일같이 혈액을 다루고, 감염관리를 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해왔다.
혈액 한 방울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된 소독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늘 하나가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타투이스트들도 결국 혈액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수준의 감염관리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예술은 아름답다. 타투도 하나의 훌륭한 예술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예술이 누군가에게 평생의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타투이스트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 몸에 침습적인 처치를 하는 직업으로서, 혈액을 다루는 동료로서, 함께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C형 간염은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도 근래까지 치료 방법이 아예 없다가, 약이 나온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지금 속으로 '휴~'라고 생각했나? 혈액으로 감염 가능한 것은 C형 간염 뿐만이 아니다.
물론 현재는 예전처럼 바늘을 재사용 하는 일은 현저하게 없을 일일 것이다. ( 그것이 정상이니까 그럴거라고 믿는다. )
그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타투를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안전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다음 글에는 감염에 관한 내용 등을 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