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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구독 2개월차

by 데오잡


나의 고교 3년을 채운 것은 학생회 활동과 동아리 창단, 그리고 독서였다.


그때는 어렸고, 공부가 싫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없이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지냈다. 토지를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그 이후 20여년동안 토지는 나에게 '서희와 길상이의 소란한 사랑이야기' 정도의 느낌으로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지인과의 대화에서 토지가 언급되었던 것을 계기로 토지를 읽기 시작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는 사람이라 다행이지 하며 읽다가 어릴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1권을 읽고 나서, 용이를 견딜 수 있게 되면 2권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햄릿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햄릿과 샤를로테, 싱클레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베르테르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유형에 속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다시 또 데미안에게 빠져들었다. 태생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언제나 착하고 좋은 인간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나에게 데미안은 이해자이자 구원자처럼 느껴졌다. 1984를 읽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는 모든 번역본을 읽을 생각이다. 오브라이언의 말처럼, 혼자 있는 인간은 나약하고 언제나 패배하기 때문에 가끔 나는 도망쳐야만 한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났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문제에서는 벗어났을 지 몰라도, 기분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른 저녁, 태권도 도장 앞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를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 밖을 보니 도장 옆 작은 카페 앞뜰에 사장 부부가 꽃화분을 옮겨심는 중이었다. 3살 정도로 보이는 막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고만고만한 네 명의 아이들이 부모를 돕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외모는 필리핀사람들 같았지만, 물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휴대폰을 든 엄마가 악센트 있는 발음으로 '치즈!'하고 외치자, 새 화분 옆에 선 아이들이 일제히 미소를 짓는다. 이 나라에서 우리는 투명한 사람들이다. 언제나 나는 명찰을 붙이고 다니는 신입생이 된다.


나는 내 사정이나 생각을 속속들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가 폐쇄적인 성격이니 나의 어떤 사정을 아주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주위에서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때로 말을 즐겨하지 않는 성격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덤덤하게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 고독에 치여서 성급하게 친구를 만들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상과 관계의 평화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가 친절할 때,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난 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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