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일이 많았나 싶다.
나는 회식엔 잘 참여하지만 지각을 자주 하는 직원이었다. 성격은 나빠도 기억력은 좋은 편이었고, 불친절하고 업무중에 자주 놀아도 야근은 좌절과 거부감 없이 했다. 전반적으로 나는 회사의 평범한 부속품 역할에 충실하던 사람이었다. 몹시 뛰어나거나 훌륭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그렇지만 그렇다고 말을 못알아듣거나 엄청 불량하지는 않아서 얼추 밥값은 하는. 놀기 좋아하고 게을러도 태도는 대충 나쁘지 않아 참고 봐줄만한 그냥 그저그런 미적지근한 직원. 짤릴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짤리고 십년을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상사운, 동료운이 좋아서였겠지.
있는 동안 가장 많을 때도 10명이 채 안되던 채용팀은 일거리가 많아 야근을 자주하는 팀이었다. 공채가 시작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한동안 이어질 야근과 하루종일 밀려드는 전화를 받을 준비를 했다. 불평불만의 사자후와 주말특근도 잦았다. 공채시즌이 되면 두달여동안 지속되는 야근과 특근사이에서 우리는 한덩어리가 되어 버텼다. 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저녁메뉴선정에는 꽤나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공채시즌 내내 우리팀은 대체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가기 일쑤였다. 야근을 마치고 가던 회사 앞 치킨집, 중식당, 횟집, 그 많은 주점들. 한두명도, 한두번도 아니었는데 너무 많이 얻어먹었나 싶기도 하네. 늦었지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십년을 채용팀에서 근무하는 동안 팀장과 팀원이 계속 바뀌었다. 잠깐 계셨던 분도 있었고, 오래 계셨던 분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연락끊긴 깨순씨, 푸들, 인생의 스승 JR, 아무도 못보내는 쟝님과 애교화신 주님. 누군가 저주라도 한 듯 나만 안바뀌고..................저주 기억나시나요, 주님.
여러 버젼의 채용팀을 겪으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채용팀은 허니허니의 채용팀이었다.
뿔 없는 산도깨비, 살랑살랑 순이 그리고 율팀장님이 떠나시고 팀장이 되신 허니허니.
나보다 엑셀도 잘하시고(나 컴활 1급있음) 야근도 잘하시고 특근도 잘하시고. 말 없이 묵묵하게 진짜 무슨 검은소처럼 일하시던 분. 둔해 보이시지만(죄송) 그 누구보다 빠릿빠릿하시고 쓸데없는 일로 곤조부리며 아랫사람 갈구지 않고 성실근면하게 왠만한거 혼자 다 하셔서 온부서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었던 분. 나의 되먹지 못한 성정도 한숨 쉬고 다 받아주시고 징징대면 징징대는 대로 이 인간 또 아프구나 하며 약(술)도 많이 사주시던 분. 전반적으로 미흡한 인간인 나에게 일을 대하는 자세,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를 직접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신 분. 내가 허니허니의 채용팀을 가장 사랑하는 큰 이유는 가장 배려받았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가장 즐겁게 회사생활을 했던 시기이기 때문이겠지.
어느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 느그 먼저가라는 허니허니를 사무실에 남겨 두고 산도깨비와 함께 퇴근하며 나누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그냥 지금 같이 가지 왜저러시는거임.'
'워커홀릭임'
'저렇게 몸을 갈아넣은들, 사장/본부장까지 가겠냐고.'
'임원은 할거 같지만...설마 임원도 안시켜주는거 아니겠지?'
'최소 임원은 하실듯'
'ㅇㅇ 부디 큰 사람되시길.'
그런 바람이 모아지고 모아진건지, 임원은 진즉에 되셨고 지난 주에 뉴스를 보니 이제 정말 큰 사람이 되셨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도 모두가 승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격하게 축하하고 싶다. 한결같은 훌륭함이, 일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살핌이 쌓이고 쌓여 위대함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당연하다. 우리 세상이 여전히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고 기쁘다. 다음에 한국가면 연락해야지 했는데 왜 다들 연락도 못하게 높으신 분들이 되는 거야아앙. 나 아마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덕분에 아직까지도 안짤렸겠다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본다.
카톡 보내려다가 마지막으로 연락드린게 언젠지 도무지 기억도 안나서 소심하게 글씁니다. 이 글을 못보실 확률이 많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말씀드려요, 제가 멀리서 축하하는 중입니다.
허니허니님, 부사장 승진 축하드려요! 건강하게 더 열심히 일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