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National Coffee Day’(진짜임)이고 나를 미카엘라로 만들어 버린 ‘세 대 천사 축일(Michaelmas)’이며 수요일이자 나의 마흔 번째 생일이다. 오늘 나는 비소로, 드디어, 마침내, 결국, 할 수 없이 마흔 살이 되었다.(마흔한 살이라고 태클 걸지 말아 줘)
어릴 적 예상했던 나의 마흔 살은, 지금의 삶과는 꽤 다른 장르였다. 책 한, 두 권을 출간했거나, 적당한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거나, 하이네켄 한국 지사로 이직했거나, 하와이의 해변에서 메로나와 스크류바를 팔거나, 외계 생명체와 친구가 된 최초의 지구인이 되거나… 뭐 대충 이런 것들이었지.
어쨌든 과거의 내 상상 속에서 마흔 살의 나는 어른이었다. 사회와 가정에서 당당히 제 몫을 하고, 내 마음의 평화를 기가 막히게 유지하여 매사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떠나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진짜 어른. 그리고 와 진짜 세상에 벌써 40살이 되어 오늘 나는 깨닫는다. 어른이 되기에 40년은 너무 짧다는 것을.
40살인 나는 여전히 사납고 까칠한 사람이다. 여전히 생각이 얕고 여전히 게으르며 여전히 금세 뜨거워져 화내기 쉽다. 인터넷엔 재미있는 세상 일들이 넘쳐나고 만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재미있어 나는 바쁘다. 카드 명세서를 훑어본다. 불혹이라니, 40년 가지고는 정말로 어림없다.
대학교 1학년, 그 해 봄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사표를 내신, 친애하던 가정 선생님(당시 24세, 여성)께서는 말씀하셨다. 지민,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단다. 늘 현재에 충실 하렴. 19세의 나는 말했다. 선생님 이제 그럼 백수예요? 그리고 선생님은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어 그리고 선생님은 이거 까진 내가 산다고 하셨어
정신 바짝 차리고 즐겨야 하는 것은 현재만이 아니다. 좋았던 싫었던, 과거의 하이라이트들을 애정 있게 그리워하고 남겨진 미래의 모습에 대한 기대 또한 성실하게 쌓아야 현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만끽할 수 있다.
40년을 살아 보니 이제 좀 알 것 같다. 인생에서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짜증 날 정도로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대로 되는 일이 아예 없지도 않다. 때론 불행이, 때론 행운이 멍 때리는 나에게 불쑥불쑥 들이닥친다. 맘대로 안 되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날들이 모이고 모아져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세상 그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내 인생이 된다. 휴먼 드라마로 시작된 내 인생의 장르는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를 지나 모험으로 변했다가 지금은 코미디(??)가 되었다. 장르가 자꾸 바뀌어도 캐릭터가 이상해도 스토리가 매력 있지 않아도 괜찮다. 주인공이 바뀌지 않는 한, 나에게 제일 재미있는 것은 내 인생이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삶은 그저 삶일 뿐이고 우리 모두는 죽음으로의 여정 위에서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기억시키려 바둥거릴 뿐이다. 그 와중에 행복하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순 없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날은 과거의 젊은 내가 행복을 느끼는 날이었고, 미래의 늙은 내가 행복을 느끼는 날일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과연 몇이나 나 지금 행복해요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면, 행복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대단한 걱정이나 생명의 위협 없이 안 바쁘게 커피 한잔 하는 거. 그게 행복 아닐까.
평탄하고 순조로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인생은 쉽지 않다. 게다가 두근대며 되새길 만한 아름다운 순간은 눈물 나게 빨리 지나가 버린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살다 보면 또 온다는 것을.
행복한 40년을 살았다.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행복할 예정이다. 건강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