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억지로 침대를 기어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지못해 일어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시간이 되면 겨우겨우 힘겹게 일어나 화장실로 가며 음악을 튼다. 침대 위에 아직 널브러져 있는 있는 딸들을 깨우기 위함이다. 여유 없는 사람의 여유 없는 아침은 다른 누구보다 더 부산스럽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 둘째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도시락은 좀 푸짐하게 싸는 편이다. 오늘의 도시락 메뉴는 딸기잼과 버터를 바른 샌드위치 두 개, 초콜릿 미니 머핀 두 개, 아기 당근 여섯 개, 버터 옥수수 반 개, 모차렐라 치즈 핫도그 하나와 초콜릿 우유다. 아마도 이 중 몇 개는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 도시락을 싸다 보면 아침에 운동을 나간 남편이 땀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들어온다. 남편은 인사할 여유도 없이 허둥대는 내 꼴을 보며 오늘도 똑같네, 하며 웃는다.
어둥지둥 도시락을 싸고, 방으로 가서 아이들을 깨운다. 둘째는 이 닦지 않겠다고, 세수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린다. 첫째는 벌써 양치 중이다. 알렉사에게 오늘의 날씨를 묻고 서랍에서 아이들 옷을 꺼낸다. 때로는 미적대며 겉도는 둘째에게 화를 낸다. 남편이 들어와 도와주는 날이면 훨씬 수월하다.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는다. 장난감을 가지고 가겠다는 둘째에게 첫째가 잔소리를 시작한다.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센터로 향한다.
만 네 살이 지나도록, 둘째가 하는 말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비슷하게 말이 느렸던 첫째 덕분이었다. 주위에서도 그랬다. 이중언어 환경의 아이들이 특히나 말이 느리다는 것을, 경험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생후 10개월에 미국으로 온 첫째는 11개월부터 어린이집에 갔는데, 만 네 살이 넘을 때까지도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거의 안 되는 지경이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 나의 눈치로 소통했고 그 마저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매일 오후, 유치원으로 첫째를 데리러 가면 나는 늘 같은 장면을 봐야 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나의 보물 주위에는 고작 두어 명의 여자아이들이 모여있을 뿐이었고, 한참을 기다려도 내 아이의 입이 열리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단순히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하기엔 좀 더 복잡한 심정이었다. 아이를 먼저 키운, 많은 이민 가정의 부모들은 말한다. 아이들은 빨리 말을 배우게 마련이고, 생활하다 보면 결국엔 말을 잘하게 될 것이니 아이들은 걱정할 것 없다고. 매일 하굣길에 첫째 아이를 픽업하며 생각했다.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남편의 파견으로 한국으로 간 우리는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해했다. 한국어를 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돈도 시간도 아깝다고들 말했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어도, 불행한 시간들을 줄일 수 있다면 나는 줄이는 것을 택할 것이다. 미국 생활 초기에, 나는 꽤 불행했다. 불행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었고, 오도카니 앉은 첫째의 뒷모습이 있었고, 외양이 다른 타인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도 아이들 담당 의사는 둘째의 언어 지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러나 그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첫째도 느렸으니 둘째도 느린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출국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만난 의사는 언어지연의 원인이 청력 때문인 경우가 있다며 정밀 청력 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한국으로 간 우리는 제법 큰 병원으로 가서 청력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정상이었고, 특진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리던 분은 말씀하셨다. 이견 없이 정상이지만 어머님이 원하면 뇌파를 이용하는 한 단계 위의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상이라는 말이 이상할 정도로 안심이 되면서 딱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애매함이 남았다. 정상이면 된 거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영유아 건강검진을 갔을 때, 아이의 언어지연에 대해서 물었다. 그때 만난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선택적 함구증'일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심리적 또는 환경적인 요인이나 성격적(완벽주의자 같은) 이유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여자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증상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이제 막 세 살이 지났으니 좀 더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한국에서의 1년 4개월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들을 보냈던 영어유치원은 몹시 만족스러웠다. 둘째는 그곳에서 알파벳과 숫자를 배웠다. 그 무렵, 과도하게 숫자와 글자를 좋아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 선생님들께 아이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성격이 고집스러울(stubborn) 뿐, 기억력이 좋고 배우는 것이 빠르다는 대답을 들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방문한 소아과에서, 아이들의 담당 의사선생님은 제법 강력하게 둘째가 언어 지연에 관련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도로 언어가 늦는 것은 분명 도움이 필요한 거라고. 지역 교육청의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서 서류를 받았다. 검사는 전체적인 발달에 대한 내용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이가 학교 시스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검사라고 이해했다. 많은 양의 질문지를 작성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월령별 개인 발달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10월에 서류를 넣고 12월에 연락을 받았다. 2월 초에, 검사 예약이 잡혔다.
검사실은 평범한 유치원 교실과 다르지 않았다. 눈에 익은 그림책과 장난감들, 알파벳이 쓰인 카펫, 낮은 테이블과 동그란 의자들. 그 날따라 드물게 일찍 일어난 아이는 점심식사 후의 노곤함과 수면 부족으로 짜증이 단단히 나 있었다. 아동 발달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는 숫자를 읽고 울고, 알파벳을 읽으며 울었다. 검사자들은 검사를 해야만 했고, 아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두 시간 넘게 화를 내다 결국엔 나에게 안겨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검사는 완료되지 못했지만 전문가들은 진단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곳으로 가서 회의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표정엔 뜻 모를 불편함이 감돌았다.
2019년 2월 5일, 그 날 우리는 둘째 아이가 언어 장애와 함께 자폐가 의심된다는 내용의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