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쓰고 오지요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2005년, 대한민국을 울린 영화 '말아톤(Marathon)'의 명대사다. 영화는 자폐를 가진 소년 초원이 사회의 괄시와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마라토너로 성공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게 성공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당시 영화를 본 나 역시 저 장면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이후 주연으로 열연한 배우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말아톤'의 저 대사는 나의 현실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2020년 말, 나는 이렇게 시작하는 에세이를 써서 지역대학원의 특수교육학과 온라인 과정에 지원했다. 아이의 상태와 교육방법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알고 싶다는 욕망도 컸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기에도 특수교육분야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 주부인데, 이렇게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안일을 잘 할 마음도 없거니와 잘 해 볼려고 해도 잘 못해서 그렇다. 밥은 해도 맛이 없고 청소는 해도 깨끗하지가 않고 정리정돈은 으음...10년 동안 나는 집안일을 피했고, 일만시간의 법칙도 나를 피했다. 빨리 졸업하고 취직해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비드19 덕분에 영어 성적 제출도 면제되어서 2021년 1월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첫 학기에는 세 과목을 들어야 했는데 각 과목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숙제(대부분 논문을 읽고 토론을 하는 숙제)가 있었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페이퍼 1~2개를 제출 해야만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공부도 영어도 잘했던 적이 없다. 영어 쪽지시험은 물론이고 수능 영어와 토익까지...영어는, 지독스럽게 빠지지 않는, 그렇지만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지긋한 뱃살 같은 존재였고 매년 나의 신년계획은 전국민이 그렇듯이 영어공부였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게 되면 영어가 많이 는다는 경험담이 많다는 환상 속에 기대가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애들이 학교간 시간,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한 뒤 새벽 3시까지 단어를 찾았지만 일주일안에 읽어야 하는 분량의 반의 반도 못 읽었다. 길고 긴 논문들과 교과서를 읽어야 그 주의 숙제가 뭔 소린지 이해할 수 있었고 세 과목 중 두 과목은 교과서가 두개였다. 하루종일 책을 붙들고 읽고 있었지만 읽어도 읽어도 다 읽지 못했다. 한국어로 배웠어도 겨우겨우 따라갈 수 있었던 분량이었다. 첫주가 지나고 나는 파파고와 구글번역을 켰다. 다행히 영타가 빠른편이었다. 만약 그때 Chat GPT가 있었다면 하루에 한시간 정도는 더 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전혀 주제와 맞지 않는 과제를 제출해서 교수님이 직접 전화를 하신 일이 있었다.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전화영어로 혼도 나구. 돌아보면 굳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중 하나는, 미국사회로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던 것도 있었다. 영어도 못하고 한국 회사 경력도 그저그런 내가, 과연 이 곳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컸다. 그렇다고 겁쟁이의 도피였다라고 말하기엔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의 돌봄이 필요했다.
봄 학기, 여름 학기, 그리고 가을 학기. 세 학기 동안 교육학 기본 수업을 몇 개 듣고, 가을 학기에 F학점을 받았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석사과정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