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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Oct 26. 2019

설리 보도 모니터 이후의 단상: 진리 씨, 늦어서 미안

기자는 뭘 쓰지 말아야할지, 시민은 뭘 떠들지 말아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1.

연예/예능/가십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기획사 중에 고르라면 SM을 가장 좋아하고요. 이수만 프로듀서는 늘 저의 취향을 저격했어요. H.O.T부터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레드벨벳. 플라이투더스카이, 신화까지 모두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번 설리 씨의 선택에 왠지 모를 책임을 느낍니다.

그와 관련해 별 것 아닌 일에 논란 딱지를 붙이거나, 그를 비방하는 투의 기사가 나오면 늘 댓글을 달았어요. ‘이런 것도 기사라고.’ ‘너희가 10대 일간지 맞냐?’ 같은 거 있잖아요. 늘 그런 기사에 ‘화나요’를 눌렀어요. 반대로 그의 인스타그램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누르면서 응원을 표시했고요. 그런 식으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근데 그가 단순히 가십 거리로 소비되는 건 싫고.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 작은 움직임으로는 코 앞에 닥친 자본숭상주의 저널리즘, 남성 중심 저널리즘(가부장적 저널리즘으로 치환할 수 있겠어요), 판사인 척 저널리즘(자신이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그 마인드!),  비인격 저널리즘 등의 쓰나미를 막을 수 없었어요. 오히려 덮쳐졌어요. 그냥, 늘 저렇구나. 파도는 늘 치는구나. 저널리즘은 원래 그런 거구나 같은 마음 있잖아요. 제 마음이 거기서 끝이었기 때문에 저는 왠지 모를 책임을 느껴요.


#2.

(이전 글에서 티가 나지만) 저는 언론 개혁을 위하는 시민 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설리 씨의 선택 이후에 제가 그와 관련된 모니터를 하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다행히 일 배분이 그렇게 되어서 제가 담당했어요. 논평과 보고서를 썼는데,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언론이 이렇게나 미쳤는데도 내가 가만히 있었구나! 이런 통탄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너무, 내가, 늦었다........ 그런 마음 다들 알죠. 내가 시간보다 느릴 때, 내가 시간보다 빠르지 못하다는 걸 실감할 때(예를 들면 약속에 지각할 때, 또는 어떤 실력이 늘지 않을 때) 뭔가 거대한 벽 앞에 무릎 꿇고 싶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모니터를 하는데...그냥 싫었어요.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이젠 시간보단 스스로를 책망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뭔 댓글이나 좋아요 누르는 걸로 가만히 있었대? 뭐라도 했었어야지! 글을 써서 기고를 하거나 아니면 사무처 식구들한테 말을 해서 이런 짓 언론이 못하게 하자!고 주장하거나 했었어야지! ..........

그래서 미안합니다. 설리 씨 늦어서 미안해요. 언론 소비자로서 또 언론 단체 활동가로서 기사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생각했는데 행동이너무 늦었어요. 제가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괜찮았을까요? 이런 질문도 사실 당신의 죽음 앞에 아무 의미없다는 걸 알아요. 다시 한번 너무 미안해요.


#3.

-왜 그의 삶은 논란’만’ 있었던 것처럼 그려지는가?

-왜 그의 삶은 대중에게 재단 당하고 평가 당하는가?

-왜 그의 삶은 남의 돈벌이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는가?

-왜 그의 삶은 일거수 일투족이 대중에게 알려져야 하는가?

-왜 그의 삶은 ‘악플’을 받아도 되는 것처럼 보였는가?

-왜 그의 삶을 본 대중들은 이런 당연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가?

-왜 대중은 그의 삶이 무참히 짓밟히는 데에 침묵했는가?

-설리가 대체 뭐길래?

-결국, 인간 설리는 누구인가? 이걸 아는 대중이 얼마나 될까?


위의 질문은 설리 씨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모니터하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정리한 거라, 더 떠오를 수 있습니다.


#4.

언론은 그의 SNS를 털면서 기사를 씁니다. 이건 비단 설리 씨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에요. 연예 매체에 들어가면 데스크가 시키는 일이 있습니다. 연예인 1천 명 인스타그램 팔로우 입니다. 그 연예인도 A급을 위주로 하라고 합니다. 그분들이 ‘돈’이 되니까요. ‘클릭’이 되니까요. 안 유명한 개그맨, 힙합 가수? 안 됩니다. 일단 수지, 아이유, 블랙핑크 제니, 지드래곤, 설리 등을 해야 한다고 시킵니다. 그리고 알림이 뜨면? 바로 기사 씁니다. 근데,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그 과정에서 노브라와 선배 배우에 대한 호칭과 노출 등이 기사화 됩니다. 그 사람이 어디 방송에 나와서 한 것도 아니고, 콘서트 장에서 한 것도 아니고 자기 SNS에 속옷을 안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선배 배우를 친근하게 부르고, 노출을 한 것인데요? 그 사람이 어디 공적인 장소에서 한 것이면 모르겠어요. 물론 SNS가 공적인 장소가 아예 아니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근데 그 사람이 자신의 SNS에 그런 사진들을 올림으로 인해서 대중에 물의를 일으켰나요? 기사화 되면서 대중들이 알게 되는 건데요? 기사로 안 쓰면, 설리 씨 인스타그램에 안 들어가 본 사람은 모르는 일이에요. 근데 그걸 왜 기사로 써서 사람을 나쁜 사람, 물의 일으킨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그런데 단순히 노브라와 호칭과 노출을 ‘했다’고 쓰지 않습니다. 꼭 가치 판단을 합니다. 제목에서건 내용에서건 그도 아니면 ‘네티즌들의 반응은’이라고 하면서요. 판사세요? 물론 기자가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고, 대중에게 해석해주는 방식의 저널리즘은 유효합니다, 가치 있습니다. 근데 ‘노브라 경악’이라던지 ‘설리가 또...’라고 설명을 붙이는 것은 판사도 하지 않는 일이고, 판단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대중에게 해석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쓰는 이유는 ‘클릭하시오’하고 하는 거 잖아요. 근데 그걸 본 대중들은 또 악플을 답니다. 기자는 그 악플을 또 기사화 해요. 그렇게 눈덩이가 커지고 커집니다. 결국 설리 씨는 논란 덩어리 삶을 사는 사람처럼 그려져요. 어느 누가 논란만 만들면서 살아갑니까? 그도 그 나름의 인간적인 삶이 있을 텐데요. 그러니 기자분들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5.

인격 모독이고 침해입니다. 명쾌해요. 물론 저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받는 불평등한 시선에서 오는 인권 침해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성별을 다 떠나서 이건 인간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모든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보장됩니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인권이 늘 충돌하는 것처럼요. 저도 이걸 어느 사안에선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의, 또 다른 사안에선 ‘인권’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데 그 기준을 매기는 건 매우 힘들어요. 그런데 설리 씨에 대해서는 알겠어요. 그가 아무리 공인? 또는 연예인? 이라고 해도 대중의 알 권리와 기자들이 돈 벌 권리, 그러니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야 하는 권리를 충족 시키기 위해 그를 희생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기사 내용 한번만 보세요, 다들. 여러분은 타인에 대해 그런 글 쓸 수 있으시겠어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뭔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한 게 있었는데요. 왜, 대중들은, 설리에 대해서, 이렇게 당연한 문제제기를 못했을까요? 그가 당하는 게 어느샌가 당연해 지면서, 그렇게 보도하지 말라는 목소리는 사라졌어요. 뭐랄까... ‘또?’ 이런 시선에서 설리 씨 관련 기사를 접하곤 했었죠. ‘또’라는 게 기자가 또 이런 기사를 썼어? 의 의미도 있겠고 설리 씨가 또 이런 문제를 일으켰어? 의 의미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우리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잊고 설리 씨 개인에 대한 가치 평가에 치중했어요. 어느 사람이나 가치 평가를 받게 될 때 찬반이 나뉩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에요. 근데 설리 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 누가, 특히 이런 쪽에 스피커가 큰 사람이(물론 저희 단체도 마찬가지고요) 이걸 가지고 ‘보도 그만하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저처럼 댓글 쓰는 사람(즉, ‘이게 뭔 기사라고 쓰냐?’ ‘니들이 노브라 논란을 만든다 만들어’ 같은 내용)은 꽤 봤는데, 이걸 공론화 시켜주는 사람은 못 봤어요. 왜 이렇게 대중의 인권 감각이 무뎌졌나요? 왜 설리는 그렇게 당해도 된다고 생각했나요? 설리가 왜요? 설리는 누군데요?


결국... 인간 설리, 최진리는 누구인지 아는 대중 있나요?



#6.

가장 싫었던 기사 중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시선 강간 싫다던 설리, 또 SNS에 노브라 사진...’ 같은 내용. 그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밝힌  내용이에요. ‘시선 강간 하는 거 싫다’고. 그럼 일차적으로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간해도 됩니까? 게다가 ‘니가 싫다면서 왜 노출해?’ 라고 묻는 건...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주의 입니다. ‘니가 짧은 치마 입어 놓고 왜 이래’, ‘니가 처신을 잘 했어야지’ 와 같은 논리에요. 가부장적이고 옛날 사고관에 갇힌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한번은 들어줄 수 있어요. (바로 지적하면 되니까요.) 근데 언론이 그렇게 말하는 건 못 참습니다. 여러분은 언론이라고요. 보도에 책임이 있고요, 일단 공익성을 모두 다 담보해야 해요. 근데 그런 시선으로 기사를 쓰면, 공익이 1도 없는 건 당연하고 해악을 끼칩니다. 노브라 사진을 올린 것의 의미가 ‘시선 강간하라’는 절.대. 아닙니다. 근데 기사를 써서 시선 강간 하셨습니다. 범죄자인 거에요. 범죄 저널리즘, 가해자 저널리즘.


#7.

두서가 없네요. 분노로 글을 쓰면 써내려가는 건 쉬울지언정, 퇴고하긴 어려운데 말이죠. 정리도 안 되네요. 근데 저는 이걸 꼭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내가 설리 씨 관련 보도를 모니터하고 어떤 감정 특히 분노를 느꼈는가. 그리고 또 비슷한 기사를 보면, 보도 행태가 나타나면 바로 이걸 떠올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걸 쓰면서 ‘제2의 설리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를 추모하고 다른 피해자를 막아주고 싶어요. 큰일을 해내야 하겠어요. 나 스스로가 ‘이런 보도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스피커가 되어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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