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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ug 01. 2019

요구는 많아도 위험 앞에서는 신중한 예민이들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민함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외부자극을 더 많이 자세하게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물리적인 자극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 또한 세세하게 느끼고 흡수합니다.

제 아들은 오감 중 촉각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감각이 비슷한 수준으로 예민합니다. 이유식 초기 단계부터 모유만큼 달거나 짜지 않은 미음은 거부했으며, 불린 쌀을 볶아서 만든 죽과 처음부터 물을 많이 붓고 끓인 죽의 식감을 정확히 구분해서 후자는 먹지 않았습니다. 기름기가 없는 안심을 다 익혀주면 먹지 않고 등심을 익혀주면 마시듯 씹어 삼켰습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프랑스빵과 고급 수제 발효빵 구분은 식은 죽 먹기에 해당했습니다. 미각은 후각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싼 똥 기저귀 쓰레기통이 가까이에 있어서 변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우앙 울음을 터트려 우리들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기저귀가 젖은 것도 아니요, 배가 고픈 것도 아니요, 이렇게 저렇게 찾고 보니 가까이에 있는 똥 기저귀가 원인이었습니다. 그것을 멀리 치우자 아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서 일어나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음악 듣기를 즐겼습니다. 기어 다니기 전에는 허공에 달린 모빌의 움직임을 따라 한 시간씩 하루 세 번을 격렬하게 버둥거리곤 했습니다. 이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가 어떤 자극에 예민한지를 알아내는 제 종합판단능력도 레벨 업이 된 느낌입니다.    


제 아들이 첫 아이이기에 저는 모든 아기들이 대부분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기 키우는 기술이 부족해서 어떤 이유식은 맛이 있고 어떤 이유식은 맛이 없게 만들어 졌나 정도의 의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7개월 차, 문화센터에서 바로 옆집에 사는 같은 월령의 아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근거리에 사는 동시에 문화센터 수업도 같아서 우리들은 자주 같이 시간을 보냈지요. 여자 아기였는데 제 아들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첫째는 제 아들만큼 심하게 낯을 가리지 않았고, 엄마와 함께 있는 이상 모르는 사람이어도 잘 다가온다는 점, 둘째는 음식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잘 많이 먹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굳이 안아주지 않고 바닥에 눕혀놔도 잘 자고 자주 울지도 않는 그야말로 순한 아기였습니다.    


이유식이나 유아식을 만들어 보신 분은 그 노고를 잘 알겁니다. 어른 음식은 어른 음식대로 아이 음식은 아이 음식대로 따로 만들어야 하며, 재료 손질법부터가 다릅니다. 특히 유아식은 재료를 잘게 손질해야 하기에 노동의 강도가 더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유아식을 만들 때 상대방 것까지 해서 서로 나눴습니다. 같은 노력으로 다양한 유아식을 구비할 수 있으니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셈입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그 음식들을 조금도 먹지 않았습니다. 특히 브로컬리, 당근, 양파 등 갖은 채소가 들어간 무염 계란찜에 대한 거부반응이 제일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여자 아기는 간이 안 된 모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많이 먹었다는 데서 더 놀랐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을 접한 후, 생각보다 주변에 예민한 사람이, 아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의 딸은 시각적으로 민감합니다. 이유식 초기에는 각종 채소가 들어간 다양한 이유식을 잘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빨강 초록 주황 노랑 등의 선명한 채소 색이 음식 중에 보이면 먹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다지지 않고 갈아서 주어도 봤지만 아이는 거부 했습니다. 결국 친구는 채소 대신 유산균을 먹였고, 아이 성장에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딸의 기호를 파악했습니다. 그렇게 추려진 음식은 밥, 김, 돈까스와 같은 통 고기요리, 멸치볶음, 달걀 프라이 등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아이가 된장찌개는 좋아해서, 친구는 각종 채소를 우려낸 물에 된장찌개를 끓여 채소는 골라내고 밥과 함께 먹이기도 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딸아이 맞춤 도시락을 쌌습니다.

촉각이 예민한 아이는 기저귀나 옷 등 몸에 붙는 소재에 따라 반응이 확연합니다. 특히 의류에 부착된 라벨이나 택을 견디지 못하거나, 면보다 거칠고 꺼끌꺼끌한 모나 마를 참지 못하기도 합니다. 청바지도 몇 번 세탁한 끝에 보드라워져야 입습니다.    


이렇게나 민감한 감각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뜻 보기에도 손이 많이 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육자 못지않게 예민한 아이 자신도 피로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는 맛이나 냄새, 소리, 촉감 등이 지속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압도되기도 합니다. 특히 낯선 공간이나 사람을 대할 때는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고, 그 새로운 정보가 안전할지 안전하지 않을지를 당장 분간할 수 없어 본능적으로 과잉 긴장하게 됩니다. 덕분에 새롭고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진입하기 전에는 신중한 편인데, 아기를 키울 때 이 점은 큰 도움이 됩니다. 몸으로 직접 세상을 배워나가는 아기들은 일단 덥석 잡거나 해보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먹고 자고 노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까다로웠지만 안전사고 면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예민한 아이라고 해서 모두가 안전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뜻이며, 예민한 아이들 중에서도 과감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예민한 감각도 아이들마다 개인차가 큽니다. 예민한 아이들은 수줍음도 많이 타는데, 이것은 낯선 것을 경계하는 것과 연관이 깊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 모두가 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야만 양육자도 아이도 행복한 관계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은 훗날 그 아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초석이 됩니다. 다양한 형태로 민감함 우리 아이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민함이 발현되고 관여하는 신체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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