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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pr 07. 2020

005. 절대 혼자 키우지마! 예민하게 태어난 아이

신체적 예민함 이해(1)

<네 잎 클로버쯤은 그냥 보면 보이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고 하죠? 나폴레옹이 “오, 네 잎이네”하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 총알이 비켜가고 목숨을 건진 데서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적 변이, 즉 돌연변입니다. 정확한 발생 비율은 알 수 없지만, 일정하게 낮은 비율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클로버가 무더기로 있는 곳엔 네 잎 클로버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예민한 우리 모자는 네 잎 클로버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습니다. 어떻게 찾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들여다보면 다르게 생긴 하나가 눈에 띈다는 정도입니다.     


학자들이 밝힌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즉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의 특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감각적으로 변별력이 높다는 점입니다. 학자들은 이 사람들이 생리학적으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어떤 기관이 더 활성화되어 있을 거라고 추론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두고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자세히 보이고・들리고・냄새가 나고・맛이 나고・피부로 느껴진다는 겁니다.   

  

우리 모자는 후각적으로도 굉장히 예민합니다. 어느 여름날 저희들은 중견기업을 끼고 있는 복잡한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던 중이었습니다. “음~ 치킨 냄새다!”라고 제가 말을 하자, “감자튀김이랑 햄버거 냄새도 나”라고 아들이 말을 보탰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요식업체도 없고, 포장 음식을 들고 가는 사람도, 배달 오토바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바람이 없는 대기가 안정적인 여름날이라서 치킨과 햄버거 세트를 포장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지나간 자리에 냄새가 남아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청각적으로는 제일 예민해서 청각자극이 과하면 신경질로 연결이 될 정도입니다. 저는 쌀을 물에 불릴 때, 물 먹은 쌀이 튀어 오르며 양푼 벽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그래서 TV 소리가 크게 나는데, 아들은 떠들고, 남편이 거기다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질문을 하면 화가 폭발합니다. 데이터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는 증상과 유사하죠. 아들은 돌 때부터 기차 영상을 좋아했는데, 아들이 영상을 흉내 내는 소리를 들어보면 증기・디젤・고속열차별로 각각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니 아이가 감각적으로 예민한 것이 보호자인 저에게 그렇게 많은 일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놀이를 할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를 쫓아가 군것질을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덟 살의 ‘클래스’인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은행열매가 터져있는 곳이나 떨어진 목련 꽃잎이 갈변한 채로 어지럽게 널려있는 길을 우회해서 가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지와 신체발달이 거의 0에 가깝던 아기였을 때는 차원이 다른 노동 거리였습니다. 신생아 때부터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울면서 깼고, 주방에서 고춧가루를 볶고 있노라면 그 매캐한 냄새에 또 울면서 깼습니다. 배부르게 젖먹이고 뽀송한 새 기저귀로 갈아주고 조용한 상태로 불도 꺼서 최적의 수면 조건을 만들어줬는데도 울면서 깨서 이유를 찾아보니, 아들 가까이에 있던 쓰레기통 안에 본인의 똥 기저귀가 있었는데, 거기서 아주 약하게 달짝지근한 똥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모유만 먹던 때니까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같은 공간에 계셨는데, 당신들께서는 그 냄새를 못 느끼시더군요.    


이유식을 시작하니 이 민감한 후각과 미각이 또 한몫을 크게 합니다. 풋내가 강한 채소를 갈아 넣은 미음은 입에도 안 댔고, 요즘 유행인 무염식으로 해주면 먹기를 거부했기에 모유만큼의 강도로 간을 해주면 먹었습니다. 더 자라니 공장에서 나온 빵과 효모 향이 살아있는 수제 발효 빵을 정확히 구분했고, 간은 좀 덜해도 육수를 제대로 낸 유명 냉면집에서는 냉면을 먹고, 고기 집에서 나오는 조미료로 국물 맛을 낸 냉면은 먹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꼬마인 아들이 잘 먹는 식당은 대부분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맛집이었습니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 취향은 곰국, 백숙, 가래떡이나 바게트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약간의 간으로 살린 류로, 크림빵과 같이 강렬한 맛들이 뒤섞인 음식 류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들과 유사하게 예민하기 때문에 아들이 알아차리는 감각을 대부분 저도 감각할 수 있고 그중 불편한 부분도 유사하게 불편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특히 예민한 아기를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도무지 아기가 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한지를 알아차리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주는 대로 먹지도 않으니,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가 부모를 괴롭히려고 까다롭고 예민하게 구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아이들은 단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더 자세하게 많이 처리하는 신체를 타고났기 때문에 그러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기는 말을 못 하고 울음으로 밖에 표현을 못 하는거죠. 특히 엄마 뱃속에서 맡던 냄새나 소리가 아닌 여러 가지 처음 느끼는 자극들이 너무도 낯설고, 걔 중에는 너무도 불쾌한 자극도 있어서 일단은 울고 보는 거지요.     

유아가 되면 쾌-불쾌 자극에 대한 선호가 더 뚜렷해집니다. 싫어하는 맛이나 이상한 모양, 처음 보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으려 하고, 보드랍지 않은 모직 옷이나 거친 마와 같은 재질의 옷이 피부에 닿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도 하고, 심지어 양말 솔기가 걷기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사소해서 짐작조차 힘든 자극거리를 알 리 없는 평균 감각의 부모들은 그저 아이가 유별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육아 자체가 고강도의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까다롭게 구는 아이에게 “유난을 떤다.”, “너는 꼭 엄마를 괴롭히지.”라며 구박부터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 특히 엄마의 말을 절대적인 참의 명제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까다롭게 구는 몹쓸 아이구나.’ 여기서 좀 더 자라면 ‘이렇게 느끼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자’며 진짜의 자기를 왜곡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아렌델 왕국의 엘사죠. 저도 그런 절차를 밟으며 성장한 결과, 어른인 지금도 제 생각・감정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학자들의 책에는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많은 HSP(Highly Sensitive Person,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이하 HSP)들의 유사사례와 처방이 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 엘사는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다가 결국은 가출합니다> 

그래서 예민하게 태어난 아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를 했다고 해도, 그 자세하고 다양한 감각적 호불호를 배려하려면 ‘체력’이 우선입니다. 이 아이는 혼자지만 보통의 한 사람 이상이 느끼는 감각적 불편이나 요구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아기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 안 되면 조・외조부모님, 가족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모님 등 가용한 노동력을 총동원해야 아기가 예뻐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덜 지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첫 6개월 동안 저와 함께 아들을 키우시더니 이렇게 명명하시더군요. 

“방안에 열(10) 사람이 있으면, 열을 다 부릴 아이”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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