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고 먼저 잘 지내기
나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JYP의 식단으로 아침을 먹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최근 들어 그가 점유하는 지구 면적이 현저히 증가했다. JYP는 요구르트와 견과, 달걀 정도를 먹나 보다. 남편이 그렇게 먹는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남편이 그렇게 출근을 하며 퇴장하고. 아들은 코로나 방학이라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다. 늦게까지 자게 둔다. 여유로운 아침이다. 책을 편다. 눈이 행을 따라 글을 훑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내 일들로 행간의 의미를 적용한다. 정신노동에도 칼로리가 든다. 배가 몹시 고파온다.
세상에나!
요즘은 피자 반죽도 택배로 주문이 가능하다. 어제 배달 온 반죽을 꺼내, 사랑하는 고르곤졸라 피자 굽기에 돌입한다. 오븐을 데우고, 반죽을 펴고 치즈 두 가지를 올려 15분만 구우면 완성된다. 마지막 1분을 남겨두고 커피를 내려야지 라는 후보 계획에 의거한 시간 활용을 염두에 둔다.
문득 사랑하는 피자 한 판을 구우며 별의별 생각이 스친다.
아내가 밥을 차려주느냐 아니냐로 자신의 결혼생활이 훌륭한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남편에 대한 단상을 얘기한 친구가 떠오르며, 국과 밥을 내놓는 일을 아내의 책무라 여기지 않는 남편과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 시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당신이 차려주는 음식 외에 다른 게 먹고 싶다고 하면 "그런 거 해 주는 엄마 찾아가"라고 불같이 화를 내신 어머니지만, 여하튼 당신의 노고로 지금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학업을 마치게 해 주셨음에 대한 감사.
내가 사랑하는 피자 한 판을 사랑한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런 당위적 이유 없이 함에 있어서 이렇게나 많은 생각이 필요한 걸까 라는 의구심까지.
피자와 커피가 구비되었는데도, 아직 늦잠을 자는 아들.
내 작은 책상으로 가져와 앉는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으니 만족스럽다. 어떤 당위나 변명의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미각 본능적인 행복감. 피자 한 입에, 문득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렬히 실천하는 친구들이 떠오른다. 마스크를 안 사고, 휴업을 하고, 철저히 집 안에서 지내는 등 사적인 이익이 수반되지 않는 세상사에도 양심이 작동하는 그 이들이 내 주위에 대거 포진되어 있음에 감사.
커피 한 모금에, 또 내 엄마도 하지 못한 내 이야기 들어주기를 정성스럽게 해 주는 친구에게 감사.
만사의 감사란 역시 칼로리에서 나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글쎄...
어쩌면 만사의 감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하는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