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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ug 28. 2019

나의 대변을 알리지 마라?!

예민한 아이 난제, 배변(1)


인상 깊은 일이라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합니다. 아들은 첫 돌에서 3개월이 더 지난 15개월이었습니다. 겨울이었는데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이웃과 친해져 그 집으로 놀러 가게 됐습니다. 그 월령의 아기와 외출할 때는 기저귀, 물, 간식을 비롯한 각종 아기 용품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아들이 자기 몸의 절반만 한 가방을 질질 끌고 그 집 현관으로 아장아장 걸어가서는 저에게 난감하고도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모습입니다.    


아들은 그 날 그 집에서 대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식욕이 많지 않은 아이지만 성장할 때가 되면 평소보다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인데, 그때가 바로 그 성장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잔뜩 먹고 와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맘때의 아가들은 그런 일에 대비해 기저귀를 찹니다. 엉덩이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새로 갈고 옷을 입히자마자 아들은 기저귀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가 저에게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유식으로 넘어와 고체형태의 대변을 보기 시작한 후로 아들이 집이 아닌 곳에서 대변을 본 기억이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겨울이 오기 전 여름에도 대변에 얽힌 인상 깊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뿌웅 뿡 하고 큰 방귀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화들짝 놀라서는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봐야 아장아장 아기 걸음이니 속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큰 방귀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자꾸 나오니 몹시 서두르고 싶었는지 급기야 넘어지는 겁니다. 신체의 1/4이나 되는 머리 둘레보다 짧은 팔로 얼른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밀어 올리며 일어나니 기저귀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시야에서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베란다 벽 뒤로 꺾어 들어갔습니다. 설사로 예측되는 큰 방귀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아들은 변을 다 본 후에야 다시 나왔습니다. 여름철 냉방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배탈이 났던 것 같습니다. 설사가 맞았습니다.    


아들의 필사적인 뜀박질은 마치 그 방귀소리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기저귀를 찬 여느 아기처럼 하던 일 하던 그 자리에서 변을 봤는데 그 날은 연타에 고성으로 방귀가 나오자마자 서둘러 몸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 아이는 대변을 아무 곳에서나 보지 않는 아이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 의구심은 아이가 커갈수록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들을 만으로 6년을 키워오면서 대변 장소는 음식과 잠과 더불어 아들의 예민함 3 대장이며, 그에 얽힌 에피소드가 아주 많습니다. 모유와 같이 유동식을 먹을 때는 고체라 할 수 없는 액체의 변이자 아기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배변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잠자는 동안 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부터는 묽은 밥과 같이 고형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변도 뭉치기 시작합니다. 두 돌 전까지는 변의를 느끼면 바로 변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항문 괄약근을 조절하는 힘이 생겨서 변을 참을 수도 있게 됩니다. 세 돌이 되기 전에는 할머니들 집을 가도 아들은 3일까지 변을 참기 시작했습니다. 3일 만에 나온 굳고 굵은 변이 할머니 집 변기를 막는 참사도 일어났습니다.


5세(만 3세) 때에는 9시부터 5시까지 긴 시간을 유치원에 있으면서 한 번도 그곳에서 대변을 본 적이 없습니다. 6~7세는 그나마 유치원이 1시 30분이 끝나서 체류하는 시간이 짧습니다만 역시나 대변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대신 아들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대변을 봅니다.    


아무 곳에서나 대변을 보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사소한 큰 문제입니다.

명절처럼 3~4일씩 다른 집에 가면 점점 식사량이 줄어듭니다. 안 그래도 예민한 감각 기관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큰데, 체내에 변이 쌓여 있으니 더부룩하여 식욕이 떨어져 음식을 덜 먹고 이는 기력 소진으로 인한 짜증으로 연결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변을 참고 있는 본인은 또 얼마나 불편할까요.

더하여 체내에서 묵어가고 있는 변에서 나오는 일명 똥방귀는 덤입니다.    


동물들이 적의 공격에 가장 무방비로 노출되는 때가 배변을 하는 때입니다. 게다가 냄새가 강한 분변은 포식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들이 최대한 몸을 숨겨서 배변을 하고, 배변 후 변을 숨기는 행위는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동물적 습성이라도 남아서였을까요? 대체 아들은 왜 아기 때부터 집이 아닌 곳에서 대변보기를 꺼렸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다만, 아기임에도 대변 장소를 가리고 요란한 방귀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한 것은 후천적인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능과 같이 타고난 특징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타고난 본능이라도 훈련에 의해 바뀔 수 있겠지만, 서커스단에서 학대받으며 조련된 동물과 같은 강압적인 방식은 아이의 내면에 큰 상처를 입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도 아이의 대변 장소 가리기에 대해서는 조바심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들 집에 가서 변을 보지 않는 날이 쌓여가는데, 변은 나오겠다고 지독한 방귀를 내보낼 때마다 아이를 따라다니며 수시로 변을 볼 것을 권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권장이 아니라 들볶음이었구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변을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아이의 말이 서툴더라도 배변 장소에 대한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차분히 말로 풀어 보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본능의 일부로 배변 장소에 대한 예민함을 타고난 걸 수도 있다고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조바심 때문에 충분히 여유롭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변 장소에 대한 아들의 예민함과 엄마의 조바심이 대격돌하게 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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