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수 Aug 20. 2019

민감한 보호자, 키즈카페 방문 전략을 수립하다

최근 밥을 지으려고 쌀을 불리던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톡 톡 톡 하고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수전에서 싱크대로 떨어지는 물소리라고 하기에는 부딪치는 물방울 면적이 더 작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세면대 등 아무리 봐도 물방울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는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둘투둘한 면의 양철 볼에 메마른 쌀알이 물을 머금으며 튀어 닿으면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토독토독 빠르게 나던 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톡 톡 하고 간격이 벌어지더니 20분쯤 지나니 없어졌습니다. 튀지 않을 정도로 수분이 흡수됐나 봅니다. 저는 막힌 공간에서 소란하면 급격하게 피로해지는데 바로 이 청각적 민감함 때문이었던 겁니다.     


아들이 만으로 3세가 되어가던 때였습니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들어간 제법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때입니다. 막 더위가 시작되려는 초여름이었습니다. 오후에 저희 집에 아들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와 한 살 어린 남자아이 남매가 놀러 왔습니다. 소형 아파트에 세 꼬마가 있으니 제법 시끌벅적했습니다. 놀이 스타일이 서로 맞지 않았는지 제 아들과 그 누나는 티격태격하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 남매들끼리 투닥거리기도 하니 좁은 제 집은 세 아이의 소리로 잠시도 조용하지 못했습니다. 덩달아 제 정신도 이미 안드로메다 근처를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더위가 한 김 식는 5시쯤에 그들이 돌아가고, 아들과 저는 40년 된 관목으로 우거진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원에, 직장인은 아직 직장에 있을 시간이어서인지 단지 안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는 넘어가는 중이라 날은 적당히 환하고, 키가 큰 나무 사이를 바람이 흔들고 지나는 소리 정도가 들리는 조용하고도 차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으음~ 조용하니까 좋네”라고 아직 아기임에도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이렇게 민감한 청각에도 불구하고 저는 쇼핑몰에서 선택적 청각 둔감 모드에 들어갑니다. 목표한 물건을 찾아내기 위해 쇼핑몰을 샅샅이 훑어보며 민감한 감각력을 발휘해 유사 물건을 꼼꼼히 비교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데 집중하는 저 자신을 보면 이율배반이다 싶기도 합니다만, 결국 쇼핑 후에는 파김치가 돼 있습니다.

이렇듯 아들도 선택적 청각 둔감 모드에 들어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키즈카페입니다.     


키즈카페는 일단 막힌 공간입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막힌 사방의 벽으로 튕겨 다니고, 휴일처럼 사람이 몰리는 날에는 시각적으로도 심난합니다. 알록달록 볼풀은 사람으로 가득하고, 볼풀 위로 설치된 장애물에는 여러 어린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데다, 하필 거기에는 농구골대가 설치되어 있어 볼풀에 있는 사람들은 골대를 향해 마구 공을 던져 댑니다. 시청각적으로 압도된 저는 후각까지 느낄 여유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기저기 기저귀에서 베어 나오는 대소변 냄새가 가끔 포착됩니다. 지하에 있는 작은 키즈카페나, 크더라도 휴일에 사람이 몰린 키즈카페는 저에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쇼핑몰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엄마처럼, 키즈카페에서 제 아들도 흥분합니다. 처음 보는 장난감과 놀이시설, 방방의 통통 거림 등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에 집중합니다. 상대방과 타협에 서툴고 신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 유아들의 경우, 키즈카페라 해도 혼자 놀게 두어서는 곤란합니다. 보호자가 곁에서 따라다니며 같은 장난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의 의사소통을 돕기도 하고 안전사고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청각적으로 민감한 저에게 혼잡한 키즈카페에서의 2시간은 탁 트인 자연에서 8시간(돌 무렵부터 저희는 동네에 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에서 온종일을 보내곤 했습니다)을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일보다 더 고행이었습니다.     


감각적으로 민감한 분들은 민감해지는 순간 신체에서 어떤 특정 느낌이 드는지를 잘 아실 겁니다. 저는 청각적으로 피곤해지면 소리들이 뚜렷이 크게 들리며 생각이 멈춥니다. 머릿속이 온통 주변 소음으로 가득한데, 아들이 사소한 질문이나 요구를 하면 짜증이 솟구칩니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여기에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일행까지 대동한 경우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닌, 상황상의 동질이라는 이유로 사교를 하게 됩니다. 이런 사이에서는 공무를 보는 것과 같은 예의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저처럼 민감한 기질을 타고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아들과 아들 친구 엄마들과 키즈 카페를 갈 때면 항상 아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는 키즈카페의 소음에 지친 상태에서 아들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아들 친구 엄마들의 이야기까지 집중해서 들어야 했기에 그야말로 청각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후로 그 친구는 키즈카페는 아들과 둘이서만 가거나, 무리로 갈 때는 사전에 식사를 충분히 하고 가서 에너지를 미리 가득 채우는 식으로 대처함으로써 그곳에서 아들에게 화를 내는 횟수가 줄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아시절 제 아들은 키즈카페에 그리 많이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아마도 열 손가락에 꼽힐 것 같습니다. 7살인 지금은 키즈카페 담당 보호자가 아빠입니다. 제 남편은 감각적으로 둔감하기에 키즈카페의 소음을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차를 마시고 아이는 아이대로 뛰어놀 수 있는 그 공간을 같이 놀아줘야 하는 놀이터보다 선호합니다.     


아이들의 천국 키즈카페, 청각적으로 예민한 아이도 선택적 둔감 모드로 들어가게 하는 마성의 장소이지만, 민감한 보호자라라면 의외로 힘들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덜 몰리는 시간대를 택하거나, 식사를 든든히 하여 사전에 충전을 한다든지 자신만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 구성원의 충돌은 기질에 대한 이해로 줄일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