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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Sep 03. 2019

굶기지도 무리하게 앉히지도 맙시다

식성이 까다로운 예민한 아이 즐겁게 밥 먹이기

제가 만나본 예민한 아이들은 대부분 식사하기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단 한 명의 밥 잘 먹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오로지 밥만 잘 먹었습니다. 가리는 음식도 많고, 처음 본 음식은 일단 피하고 보며, 그마나 입에 억지로 넣어준 음식은 얼마나 오래도록 물고 있는지... 밥 먹이기는 육아 노동 중에서도 탑 오브 탑입니다. 밥을 먹이는 일에는 장보기, 요리하기, 먹이기, 설거지까지가 포함되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식사에 대해서 까다롭게 구는 아이들을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럽니다. 

“먹을 때까지 굶겨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육아 교훈 중 “먹지 않으면 굶겨라”라는 낭설만큼 생명력이 끈질기고 영향력도 막강한 믿음이 없습니다. 실제로 한 두 끼를 굶으면 잘 먹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프면 다 맛있으니까요. 그런데 간혹 먹는 걸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아무리 굶겨도 음식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웃 아이 중에서 굶다 굶다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사례도 보았습니다. 아이가 안 먹는다고 무조건 굶기기보다는 아이의 식사량, 기호, 식사 간격 등을 잘 관찰해서 아이에게 맞는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식사시간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운 시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편이 올바른 식습관 형성에 더 기여한다고 봅니다.    


제 아들의 경우에도 굶긴다고 해서 그리 음식을 반기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식사 시간을 넘겨서라도 놀이에 집중했습니다. 슬슬 주린 배로 인해 기력이 떨어지면 짜증을 내다가 결국에는 바닥에 엎드려 붙어서 바퀴 달린 자동차를 앞뒤로 힘없이 굴리며 놀았습니다. 초코가 발려 있는 과자를 줘도 몇 점 먹고는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식탐이나 식욕도 기질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민한 아이들의 경우, 제시간에 식사를 잘 공급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예민함이란 결국 신경계에서 처리되는 정보의 양이 많고 속도가 빠른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즉, 예민한 신체는 그렇지 않은 신체보다 시간당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이 많다는 뜻입니다. LTE 스마트폰과 2G 폰의 배터리 소모량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특히 와이파이라든지 신호가 미약한 곳에서 스마트폰의 배터리 소모량은 가속도가 붙는 수준입니다. 처리하는 정보의 양이 많은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유아들의 경우, 배고픔이나 졸림과 같은 본능적인 감각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편안한 상태가 아닌 불편함 정도로 알고 그냥 울거나 짜증을 냅니다. 그런데 기질적으로 활동적인 아이들의 경우, 식사와 같이 정지한 상태로 음식을 씹어서 삼키는 일을 무척이나 지루해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가들은 두 돌이 지나야 어금니가 나오는 등 이의 개수가 얼마 되지 않고 턱의 힘도 약하기 때문에 아무리 부드러운 음식을 줘도 어른보다 식사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음식에 대해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데다, 배가 고파서 불편한 건지를 확실히 모르니 식사를 거르고 계속 놀 수가 있습니다. 굶고 배고프고 짜증 나고 힘 빠지다 보면 잠이 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자고 일어나서 식사를 많이 해주면 좋은데, 취침과 함께 위장도 쉬어서인지 허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보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식사량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식사예절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하기입니다.

골고루 식사하기와 더불어 요즘 유아 식습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 곳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만 식사하기입니다. 먹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잘 통하는 방법입니다. 아무리 먹기를 좋아해도 유아들은 놀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식사보다는 놀이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때 30분이 지나도 다 먹지 않으면 치우는 방법은 효과가 좋습니다. 식사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이런 주의 환기를 통해서 식사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식사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면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식사 시간이 줄어든 것을 반기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아기 앞에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리는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담은 ‘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식탐이 별로 없는 유아에게 식사란 의자에 갇혀 있어야 순간입니다. 게다가 시간에 대한 인지력도 없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함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저 어른들의 노력은 결코 ‘오버’가 아닌 필요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를 키우고 계시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민한 아이들의 경우, 특히 이런 시청각적인 자극은 식사를 끝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를 좋아하는 이 아이들의 특성상 열중합니다. 그때에 입 앞에다 숟가락을 갖다 대어주면 식사에 대한 집중력이 흩어져서 기계적으로 먹게 됩니다. 요즘은 유아용 도서가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아주 갓난아기부터 볼 수 있는 도서나 오감 자극 놀이 감이 많으므로 그중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읽어주며 얼렁뚱땅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이 효과가 매우 컸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매체를 이용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책을 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아기들이 책을 재미있게 받아들인다는 점과 식사 때 책을 이용하는 습관이 들면 의외로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책이 스마트폰만큼 아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아이는 순간순간 변하는 강한 자극의 영상도 좋아하지만, 엄마가 책을 가지고 저만을 위해서 이런저런 글을 읽어주고 말을 걸어주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는 커갈수록 행동반경이 커집니다. 식사 내내 앉혀 놓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럴 때는 그냥 돌아다니며 먹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도무지 식탐이 없는 아이를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앉혀 놓으니 오히려 혼낼 일만 늘었습니다. 식탁에 와서 한입 넣고 놀다 와서 또 한입 먹고, 그러다 보면 목표한 양을 다 먹일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5세 때부터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급식시간에 돌아다니며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어른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테이블을 벗어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다만 집에서는 돌아다니며 먹습니다만, 만으로 6세가 다 되어가는 지금은 슬슬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좀 더 엄하게 했다면 더 이른 나이에 앉아서 식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부 식당이나 유치원에서 식사예절을 잘 지켰기에 만족합니다. 다 커서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어른은 없듯이, 식사예절도 결국은 어떤 시점에 평범한 수준으로 수렴합니다. 유아부터 바른 식습관 길러주기에 얽매여 아이가 식사시간을 싫어하게 되거나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보다는 식사예절을 조금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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