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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Sep 19. 2019

영재라면 지구가 고독할 수 있다?!

도서 <영재의 심리학> & 영화 <스피벳; 천재 발명가의 기묘한 여행>

천재 혹은 영재, 지구가 고독한 사람들


『영재발굴단』이라는 TV쇼가 있다. 대략 10세 이하의 영재들을 찾아내서 그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영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 학자나 어른을 연결해 주는 등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평범한 어른조차 알 수 없는 각종 수학 화학 등 어려운 학문의 개념을 탐독하거나 바둑 육상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은 쇼로 중계될 만큼 충분한 구경거리다. 우선은 같은 또래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이고 다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둘을 조합하면 ‘흔치 않은 우수한 존재’다.

흔히 사람들은 지적능력이든 운동능력이든 남들보다 우수한 것을 단순히 우월함이라는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흔치 않음은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영재발굴단』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외롭다.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수학이나 로봇, 화학으로 통할 친구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카이스트 수학과 학생들이나 미국에서 공부 중인 유명한 로봇학자, 화학 교수님을 만나서 관련 얘기를 나누고서야 소통의 즐거움을 갖는다.


<영재의 심리학>, 그들의 고독을 알아주다

<출처:예스24>

프랑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요법가인 잔 시오파생은 일찍이 이 부분에 주목하여 영재를 연구한 성과를 모아 <영재의 심리학_남다른 지능과 감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출간하였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뒤이어 <어른이 된 영재들_어른이 될 수 없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을 발표하는데 역시나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자신이 영재인 줄 모르고 남모르는 고통을 겪으며 성장한 어른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양적인 측면만 따지자면 IQ 130 이상을 영재라고 한다. 하지만 잔이 주목한 부분은 질적인 측면이다. 영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몇 년을 앞선 수준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들로 나뭇가지처럼 생각이 확장되며, 직관・창의・정서를 관장하는 우뇌가 우세하다. 또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이 크고 속도도 빨라서 단 시간에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오래오래 자세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객관화하여 평가할 수도 있다. 


인지의 측면만 본다면 양적으로 아이큐가 높든, 질적으로 다르게 사고를 하든 ‘똑똑하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아 보인다. 지금도 아가들에게 하는 칭찬을 듣고 있노라면 ‘착하다’와 ‘똑똑하다’가 제일 흔하다. 하지만 파란 작은 생명체인 스머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똘똘이는 언제나 무리 밖으로 내동댕이 처지며 에피소드의 끝을 장식한다. 인간 세계도 그러하다. 천재나 영재는 평범한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사실만 알아내거나 근거가 없어 보이는 앞 일 예측을 한다. 지나고 보면 예측한대로 일이 이루어졌으나 평범한 아이들은 영재가 이해한 몇 단계에 걸친 논리적 전개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똘똘이 스머프처럼 내동댕이 처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인지적 측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과도하게 깊은 감수성을 가진데다 타인의 감정을 쉽게 알아차리고 이입한다. 이 아이들이 다르게 사고하거나 감정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기 쉽다. “쓸데없이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구나” “다른 아이들은 그냥 하는데 왜 너만 까다롭게 구느냐” 등. 감수성이 깊고 타인의 감정을 흡수하는 영재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올바른 자기상을 구축하거나 자존감을 쌓기란 쉽지 않다. 잔의 책은 남모르는 그들의 고통을 알아주었기에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이리라.


고독한 천재를 둘러싼 가족 화합 판타지, <스피벳; 천재 발명가의 기묘한 여행>


물방울의 놀라운 점은 항상 저항이 가장 적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정반대다.


스피벳은 농장에 사는 천재 소년이다. 수학과 과학에 능통하다. 물방울의 물리적 이해를 인간사에서 응용할 줄도 안다. 그의 천재성이 세상에 처음 드러났을 때, 그것을 단지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을 꿰뚫어본 그의 독백이다. 선생님이 모르는 것을 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모독을 당해야했던 그의 천재성을 알아준 첫 어른이 실은 그러하다는 것을 안 실망감과 고독감이 흐릿하게 처리된 어른으로 인해 뚜렷이 부각된다.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다. 고독한 천재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너무도 다른 가족 구성원이 상처를 극복하며 이해하고 화합한다. 가족과 영웅으로 점철되는 미국영화냐고? 아니다.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감독은 프랑스인이다. 장 삐에르 주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그의 영화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어리언4>. <아멜리에> 등 다수다. “창조적인 시각 스타일”이라는 평이 달린 그답게 이 영화도 시각적으로 즐겁다. 행복한 결말로 가는 판타지에 맞는 예쁘고 선명한 영상이다.

<카우보이 아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곤충학자 엄마와 엄마가 잡은 머릿니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리는 천재 아들과 카우보이 아빠라는 서로 다른 가족 조합>


<이발하다 발견한 이를 보며 곤충학자 엄마는 “머릿니는 페디큘러스 휴마너스 캐피티스로 아노플루라 과에 속하지”라고 알려준다>
<이가 도망갔다고 하자, 카우보이 아빠는 올가미로 잡으라며 카우보이식 농담을 한다>

“머릿니는 페디큘러스 휴마너스 캐피티스로 아노플루라 과에 속하지”

곤충학자 엄마는 한 아들의 머리를 깎아주며 이를 잡아 다른 아들에게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카우보이 아빠. 두 아들은 쌍둥이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형 스피벳, 발명가다. 머리를 대고 있는 아이는 동생이다. 하지만 키도 덩치도 크다. 총을 잘 쏘는 카우보이다. 쌍둥이는 너무도 다르지만, 동생은 총을 쏘고 형은 그 음파를 분석하며 함께 놀 수 있는 어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가족의 평화는 깨진다. 그 와중에 스피벳의 발명품이 뉴욕 스미소니언협회의 수상작으로 선정이 되어 상을 받기 위한 여행을 감행한다. 가출이다. 거리와 코스에 대한 정확한 수학계산은 오히려 고급스러운 유머 같다. 여행길은 녹록치 않지만 판타지답게 성공적이다. 수상 연설을 계기로 상품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는 천재와 그를 구하기 위한 가족들의 단합과 사고로 인한 상처의 봉합으로 영화는 끝난다.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 집으로부터의 거리, 그 거리를 자신의 발자국으로 나눈 정확한 계산처럼 영화는 정확하

다. 스피벳의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전개되는 서사와 장면은 이야기의 뼈대를 빈틈없이 채운다. 감독 본인이 천재가 아닐까 싶다.

 

스피벳은 화자다. 1인칭 관찰자시점으로 서사한다.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눈 주위 근육 움직임으로 분석하는 해부도가 첨가된 설명, 반딧불 잡아먹기 놀이 행동을 통한 반려견의 심리 추론 등 스피벳의 다양한 상황 해석이 백미다.

실제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 생각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탐구는 담수어와 염수어가 소금기를 조절하는 다른 신체기관을 가졌으며, 신체기관을 더 파고 들어가 보면 물에 산다고 해서 모두 어류가 아니고 포유류도 있음과 거기서 나아가 생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기 기준은 종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것은 또 빅뱅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물고기로 시작해 빅뱅으로까지 뻗어나가는 생각 연결망은 그들이 굳이 공부를 할 때만 가동하는 생각 방식이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된다. 스피벳의 서사처럼.

 


상대방의 대화나 행동 패턴을 직관적으로 감지하여 상대를 파악하고, 세상사를 바라본다. 궁금한 것이 많고 알고 싶다. 단편적인 사실들이 사실은 일련의 상관들로 얽혀 있음을 파악한다. 수 세기에 걸쳐 똑같이 행해지고 있는 종교 행사를 하며 수 백 년이라는 시간의 연장선에 자신을 두고 전율하기도 한다. 많이 깊게 알고 강렬하게 느낀다. 높은 지능은 축복같다.

하지만 이 많은 것을 재미있게 나눌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상황이나 환경, 대개는 질투의 대상이나 상업적으로 소비되기도 하는 현상은 안타깝다.

 


생각이 많고, 아는 것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해서 고독하다면 의심해 보는 게 어떨까. 혹시 내가 천재인가?!

더불어 자신이 모났는가를 의심하기보다는, 또 다른 알기를 좋아하고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깊은 이를 찾아 나서는데 주력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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