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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Sep 19. 2019

왜 나는 이용만 당할까?

영화 <50/50> & 스테판 클레르제 <기운 빼앗는 사람 인생에...>

<50/50>의 인물들; 착한 놈, 나쁜 년, 이상한 놈 & 엄마는 대체 왜...

<출처:다음영화>

이 영화는 군살 없이 잘 관리된 마른 몸을 한 젊은 남자가 조깅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자(조셉 고든 래빗)는 27세,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화산 폭발과 같은 교양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차량사고로 인한 사망 사고 방지를 위해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다. 동거 중인 여자친구는 금발,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미녀다. 그의 살림살이는 깨끗하고 그녀는 그렇지 못하여 그가 그녀의 청소까지 해준다. 그녀는 생활비도 내지 않는다. 그녀와는 섹스를 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애정전선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그는 친구(세스 로건)의 차로 출근한다. 둘은 같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한다. 친구의 업무분야는 신변잡기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턱수염이 북슬북슬한 친구는 목소리도 크다. 출근 전 매일 들르는 샌드위치점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거침없이 생활비를 내지도, 청소를 하지도 않으면서도 수 일째 섹스를 하지 않는 남자의 동거녀를 떠들어대듯이 비난한다. 그에게 섹스란 오랜 시간 지속되는 연애에서든 하룻밤의 만남에서든 이성 관계의 전부를 의미한다.


제목 50/50은 남자의 생존확률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범생 생활을 하는 그가 척추암 진단을 받는다. 여자친구는 이 소식을 듣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일관되게 행동한다. 그의 집에 얹혀살며 섹스를 포함한 일체의 특별 환자 돌봄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개를 한 마리 선물한다. 그 개를 돌보는 건 결국은 그다. 

친구는 절반의 생존확률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그에게 해석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의 대부분은 그가 암 환자라는 불행을 하룻밤 섹스 상대를 낚는 도구로 쓰도록 유도하는데 들인다. 결국 그는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되는데 그 동기는 틀린 적이 없는 슬픈 예감이다. 동거녀는 개인전을 열었고,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공개적으로 깊은 키스를 하는 모습을 친구가 목격하고는 동영상에 담아와 그에게 제보한다. 마침 한 자리에 모인 셋, 그는 침묵하고, 동거녀는 변명하고, 친구는 고래고래 동거녀의 변명을 차단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한 결과 그에게 얹혀사는 동거녀를 떼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외동아들이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간병한다. 어머니는 사대 대장부의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병을 알리길 꺼린다. 병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는 불안이 심하고 걱정이 많다. 아들의 근심이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해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들에게 전가한다. 건장한 체격은 강인한 내면을 가꾸는 데는 소용이 없고 아들을 숨 막히게 하는 압박감에는 큰 기여를 한다. 그의 수술 상담 보호자로 온 어머니는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지 못하고 의사의 출신성분을 빌미로 까다롭게 군다. 역시나 그는 이 소동을 중재하는 몫을 다한다.


인간의 본능 관계욕구, 그 열쇠는 애착

<출처:예스2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 뛰어난 운동신경의 강인한 신체를 가진 상위 포식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존에 성공하여 번성한 것은 무리생활을 한데서 비롯한다. 그 결과 무리생활은 인간에게 생존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본능의 일부로 유전자에 새겨졌다. 무리생활은 곧 관계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완성한다. 제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그 뛰어남을 확인하고 인정해 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같지 않은 남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 남들이 나와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는, 삶의 만족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런 우리 인간의 생존방식을 정확히 꿰뚫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의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관계의 시작은 주양육자, 대개는 엄마하고다. 엄마와 생애 처음으로 맺은 관계는 이후 그의 인생 전체에서 맺게 되는 관계의 바탕이 된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고 칭하는데, 가까운 사람과 강한 감정적 유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일관되고 바른 사랑을 준다면 아이는 엄마라는 정신적인 안전기지를 갖게되며, 나아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할 때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 학문적인 용어로는 안정 애착이라고 한다.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불안정 애착이 된다. 불안정 애착은 그 증상에 따라 저항형과 회피형으로 나뉜다. 이 두 증상을 섞어서 가지고 있다면 혼란형이다. 회피형은 쉽게 말해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관계 자체를 피하는 형이다. 엄마가 아이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방치한 경우, 아이는 그와 같이 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를 스스로 제거한다. 저항형은 엄마가 일관된 기준 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아이를 혼내거나 아이가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했을 때에만 애정을 주는 경우에 생겨난다. 이 경우 아이는 어쩌다 한 번 받은 칭찬을 다시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사랑은 노력할 때마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마음속에 분노가 쌓인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신뢰하기 어렵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상대가 언제 그 사랑을 회수해 갈지 언제나 불안하다. 그래서 상대의 눈치를 많이 보고 복종하려고 노력한다.


저항형은 생애 초기에 획득하지 못한 무한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기에 아무에게나 쉽게 정서적으로 의존한다.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에게 모두 맞춘다. 진정으로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극중 남자가 그러하다. 육감적인 미술가 동거녀는 남자를 아낌없이 이용한다. 그 배경에는 남자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못한 엄마가 있다. 특히나 현재는 남편까지 치매 환자이니, 아들은 더욱더 조심스럽다.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 혹시 멘탈 뱀파이어의 사냥감?


그런데 유독 이런 타입의 사람을 노리는 사냥꾼이 있으니 ‘멘탈 뱀파이어’다. 멘탈 뱀파이어는 현재 프랑스에서 대중 심리서적 및 저널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 스테판 클레르제가 자신의 저서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에서 사용한 용어다. 그는 멘탈 뱀파이어의 유형을 분석하고 이들의 사냥감이 되는 사람들의 심리적 원인을 밝힌다. 직장, 가족, 친구/연인 등 각 관계 별 멘탈 뱀파이어 유형을 소개하고, 나아가 멘탈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방법과 건전한 관계를 맺기 위한 심리 회복 방안을 제시한다.


멘탈 뱀파이어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멘탈을 빨아들여만 자신의 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멘탈을 빼앗긴 사람은 생기를 잃듯 심리적 건강함을 잃는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기력이 없어지고 신체적으로도 소화불량, 두통, 무기력과 같은 증상이 일어난다. 멘탈 뱀파이어의 유형도 다양하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 쏟아내는 유형, 상대방보다 우월하다고 억지 인정을 받으려는 유형,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착취하는 유형 등 그들은 사냥감에게 자신을 거부할 경우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독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전략 등을 이용한다.


멘탈 뱀파이어의 손쉬운 사냥감 중에는 저항형과 같이 정서적으로 의존할 사람이 필요한 경우 외에도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과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꼽았는데, 영화 속 남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 그는 결국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암을 이용해 처음 만난 여자와 동침을 하게 된다. 그는 매사에 깔끔하고 마우나 화산 활동과 같은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예민하고도 섬세한 남자다. 화산 활동 다큐 라디오 프로그램은 신변잡기를 즐기는 친구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취향이나 기질을 제대로 인정받는다. 바로 그의 색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불러주는 상대방과 화산으로 인해서.

그의 취향이나 기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 삼거나 악용하는 사람과 관계하였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수 일째 섹스를 하지 않던 동거녀는 다른 남자와 키스를 목격 당한 후 남자의 집에서 쫓겨난다. 그녀를 쫓아낸 것은 남자의 친구다. 얼마 후 그녀는 다시 돌아온다. 이유는 “전시회에서 작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아서”다. 다시 받아주지 않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키스를 시작하지만 남자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녀는 화를 내며 떠난다. 슬퍼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잘못된 관계는 스스로 멈추라고 조언하다. 남자는 그제야 스스로 잘못된 관계를 멈추었다. 그리고 수술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지나며 자신을 괴롭히는 관계를 봉합하고 새로운 건전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 과정에서는 그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표현할 수 있었고 제대로 존중받는 법을 경험한다. 이 모두를 저자는 이 책에서 제시한다.


관계 심리학이 최근 각광 받고 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관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행복하지 못하다면 먼저 엄마와의 관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힘들 일이 있을 때 엄마를 생각하면 힘이 나는지, 더 힘이 드는지. 엄마를 생각하면 든든한지 부담스러운지 등. 영화에서 남자의 엄마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전가하는 가족 내 멘탈 뱀파이어다. 

다음으로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존감, 애정에 대한 욕구,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쉬운 말로 간결하게 설명한다.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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