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수 Nov 02. 2019

그래서 제이홉의 팬이 됐다니까

부러움 vs 시기, 질투

꿈은 그러했다.

나는 고등학생이다. 남녀공학이고, 급우들이 모여 자유롭게 작은 파티를 한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담임이다. 파티 무리 중 화이트 블루종에 배기 블루진,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고 귀를 덮지 않을 정도의 단정한 머리를 한 댄디한 남학생이 조금 떨어져 있는 나를 향해 웃는다. 나도 그를 향해 웃으며 눈을 맞춘다. 그 남학생은 담임에게 다가가 묻는다. 담임은 "아직이야. 5분 뒤면 결과가 발표될 거야."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라는 신호가 역력하다. 그 남학생이 생각하고 있는 바는 바로 자신의 전교 1등. 그 신호를 감지한 남학생이 다시 나를 보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나도 눈을 맞추며 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네가 1등이면 나는 2등이네. 네가 1등을 해서 기뻐.'라는 미소이자 '너의 기쁨을 나와 나누는 거야!'라는 순수한 감사함과 질투가 전혀 섞이지 않은 퓨어한 축하의 교감이었다.


행복한 느낌으로 잠을 깼는데, 그 남학생은 제이홉이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 보이밴드 방탄소년단의 멤버다. 나는 방탄소년단을 잘 모른다. 그중에서도 제이홉은 더 모른다. 다른 멤버라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그도 물론 나를 모른다. 그런데 그런 꿈이었다. 무의식은 역시나 깊고 견고하여 주인도 그 내용물을 알지 못하는 게 확실하다.


월드스타 제이홉이 나와서가 아니라, 타인의 기쁨을 퓨어하게 나눌 수 있는 성숙하고 따뜻한 관계에 크게 감동했다. 진심으로 행복하고 뿌듯했다. 10년 지기인 남자 사람 친구를 포함해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남사친의 반응이 그중 가장 미지근하다, "그게 끝이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한데 ㅋㅋㅋ" 그러거나 말거나 내 감동은 여전했다.   


아니, 제이홉의 팬이 아닌데도 이 꿈이 그렇게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발단은 한 짤이었다.

제목이 친구에게 다리가 생겼을 때였던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우르르 있다. 거기로 한 여자 친구가 걸어온다. 교복은 치마다. 치마 아래로 한쪽 다리는 의족이다. 이 아이가 의족 포함 두 다리로 걸어오니 우르르 친구 무리들이 그 아이를 둘러싼다. 모두 환호성과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중 한 아이는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허리까지 숙이고 그 다리를 보며 입에다 양손을 갖다 댄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데 좋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다시 그 아이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의족을 한 친구를 껴안는다. 친구에게 다리가 생긴 것이 퓨어하게 기쁜 게 확실해 보였다. 내 얼굴은 엄마미소가, 내 마음에는 홀가분한 자유가 펼쳐졌다. 그 짤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다른 사람에게 생긴 좋은 일을 축하하고 기뻐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런 축하를 받아본 적인 있었던가?

어렸던 나에게 생긴 기쁨이 나의 모친에게는 대개는 시답잖은 일이거나 엄마의 불행한 처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자신의 기쁨에만 빠진 이기적인 자식이라는 인증을 받는 조건이었다. 어린이가 사소하고 유치한 것에 쉽게 기뻐하는 것은 진화의 생존전략상 성공한 방략이라서 본능에 새겨진 것이다. 어린이는 쉽게 기뻐야 어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성장하는 긴 기간을 잘 버틸 수 있다. 불친절한 어른 밑에서도 살아는 남아야 하니까. 나는 그 본능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 와중에 어린이의 당연한 실수는 인격모독으로 보복을 당했고, 칭찬을 받는 수단은 무리 속에서 이루어낸 상대적으로 뛰어난 성과였다. 내 삶에서 나를 제외한 타자란 열등감과 우월감으로만 양분된 존재감을 제로섬으로 투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세팅되어 버렸다.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안 됐다. 어린이에게 성과란 대개는 성적이다. 뛰어난 성적은 기쁨이나 축하가 아닌 무탈하기 위한 옵션이 되었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데드라인이었다. 나보다 뛰어난 성적을 받는 학우들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갖지 못했다. 나 또한 모난 인간이 되었다.


존재감 획득과 원초적인 감정 분화에 실패하고 과도한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데 자신을 소모하다 보면 관계도 건강하지 못하다. 어려서 만나 어른이 되기까지 줄곧 "너는 나의 넘버원 친구야."를 얘기하며 서로의 집에 세면도구를 두고 잠을 잘 정도로 각별하던 친구는 나의 첫 대학 성적 우수 장학금 수령에, "나는 요즘 너무 우울하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라는 원망을 당했다. 나의 행복이 자신의 불행을 돋보이게 하는 모친의 그것과 같았다.


몇 년 전, 같은 아파트 단지 세입자 중 한 친구가 아파트를 매입했다. 자가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모 나있던 나도 20년의 세월을 거치며 많이 깎였다. "축하해, 정말 축하해." 마음 한 편으로는 여전히 세입자인 나 자신과 비교가 되어 쓰렸지만 그것은 부러움 정도다. 그런데 다른 세입자 친구로부터 연락이 온다. 자가를 소유하게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교해 자학과 연민의 단계로 접어들어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과 불로소득이라는 도덕으로까지 주제를 확대한다. 본질은 질투다. 낭패지만 동조와 위로, 응원을 보낸다. 그의 유년도 존재감 획득, 원초적인 감정 분화를 비롯한 건강한 성인으로서의 토대가 될 심리적 발달과업을 완수하지 못할 정도로 척박했나 보다 싶다.


제이홉이 등장한 꿈은 그래서 큰 의미였다. 나는 나와 상대방의 기쁨을 퓨어하게 나누고 축하하는 기쁨을 갈망하고 또 알았노라고 무의식이 반영해 주었다.


그래서 결론은?

제이홉의 팬이 되었다는 거지!!



작가의 이전글 영재라면 지구가 고독할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