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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06. 2019

묻고 더블로 가_예민함에 스트레스를 더하는 문화적 압박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물은 개입니다. 저는 주변에서 고양이를 “영물”이라며 개보다 꺼려하는 사람을 꽤나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고양이가 반려동물 중 다수를 차지합니다. 설마 일본에 사는 고양이는 친절하고, 한국에 사는 고양이는 불친절해서 일까요? 그럴 리는 없겠지요. 고양이는 어디에서나 같은 고양이지만, 고양이를 수용하는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사전에서 정의한 영물(靈物)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령스러운 물건이나 짐승. 2. 약고 영리한 짐승을 신통히 여겨 이르는 말.

고양이는 개에 비해 가축화의 역사가 짧고 야생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온 기간이 길기에 사냥꾼의 습성이 강합니다. 무리가 아닌 독립생활을 하기에 개에 비하면 개인주의자입니다. 고마움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이 사냥한 소중한 쥐 나 뱀을 선물하고, 낮과 밤 모두 잘 볼 수 있어 빛이 많은 낮에는 동공이 축소되고 밤에는 확대됩니다. 이런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새침하고, 해코지를 하고, 무서운 눈을 가졌다며 영물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고양이임에도 일본에서는 반려동물로, 한국에서는 꺼림칙한 영물로 취급을 받으니, 같은 고양이라면 한국에 있느냐 일본에 있느냐에 따라 행복지수가 크게 다를 겁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핀란드 사람들/출처: 브런치 북유럽연구소>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나와서 문화 차이를 알아보는 TV쇼 <비정상회담>에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널찍한 간격으로 인도에 띄엄띄엄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평소 버스 정류장에서 핀란드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사람 뒤에 거의 바짝 붙어서 줄을 서고, 버스가 오면 서로 몸이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몰아치며 버스에 오르는지라 문화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조차 사람과 사람 사이에 두는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문화권별로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코네티컷 대학의 찰스 슈퍼와 사라 하크네스는 문화권별로 다른 양육방식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미국의 대조군으로 네덜란드를 택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육아에서 휴식, 규칙성, 청결을 가장 강조하기에 밤에 오랫동안 숙면을 취하고, 부모도 오후 7시 이후로는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공식 행사로 평소보다 늦게 취침을 하게 되면 다음 날 등교시간을 늦췄습니다. 또한 아이에게 차분하고 조용히 예의를 지키며 지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의 아이들은 조용히 있기보다는 활력이 넘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그 결과 네덜란드 아이들은 하루를 차분하게 지내고 저녁부터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미국 아이들은 날이 저물수록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았고 잠을 덜 잤습니다. 외부 자극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 신체를 가진 예민한 아이들에게 이런 문화적으로 요구되는 활발함은 그 스트레스를 “묻고 더블로 가야" 하는 결과를 만듭니다.    


우리의 예민한 아이들은 어느 나라에서 더 편안해할까요?

네덜란드나 핀란드겠지요. 서로의 개인거리가 넓어서 개인의 영역이 침범당하기 쉽지 않으니 타인으로 인한 불필요한 자극이 덜 할 것입니다. 대부분 조용히 차분하게 하루를 보내도 되고 모두가 저녁 일찍 집에 들어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니 내향적이거나 예민한 사람은 엑스트라의 사회활동에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오히려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요즘은 드라마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주인공의 캐릭터도 다양해졌습니다.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처럼 활발하거나 유연한 성격이라기보다는 내향성이 강한 주인공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제가 봤던 아동・청소년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은 활발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어떤 어른을 대하든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 캐릭터가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성향이 캐릭터에 반영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B형 남자‘가 돌풍을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B형은 제멋대로인 데다 하고 싶은 데로 하며, 이런 남자라면 카리스마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반대로 A형은 소심하다며 직원 채용에서 제외한 사례도 있습니다. 혈액형별 성격 분류는 일본과 한국에서만 맹신할 뿐, 사실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_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거침없이 반영하는 사람_을 선호하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예민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소심하고, 주저하고,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서 경계하고 신중한 것뿐인데 문화적 성향 선호도와는 대척점에 있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점이 고양이가 영물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처럼 아쉽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먼저 씩씩하게 안녕하세요를 하지 못하고 엄마 곁에 붙어 서거나, 취향이 같은 소수 아이하고만 놀이를 하고, 학예회 무대에서 춤추기를 꺼려하거나, 공연에 필요한 특별한 의상을 입고 싶지 않아 한사코 거부하는 예민한 아이들이 틀렸거나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틀렸거나 부족한 쪽은 오히려 사람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의 경우, 요즘은 sns에 ‘집사’를 자처하며 자신의 반려묘를 공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고양이의 특징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써 고양이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 학부형은 자신의 5학년 아들이 예민하지만 학교에서는 인싸라고 합니다. 대신 집에 오면 학원 등의 과외활동을 최소화하는 등 일체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 책을 보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충전을 한답니다. 그 엄마는 아들이 학교에서 거의 모든 외부활동 에너지를 사용하고 온 것을 알고 그렇게 하도록 배려하며, 보충해야 할 학습이 있다면 다수의 아이가 있는 학원보다는 개인 과외를 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엄마의 이런 배려는 첫 대면에 친화력 갑, 무리에서는 리더, 누구와도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인싸를 선호하는 문화적 압력에서 아들을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게 보전하는 충분한 보호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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