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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08. 2019

애착이론_독재자가 거세한 인간 행복의 침통한 교훈

애착이론이 나오게 된 데에는 잔인하고 슬픈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애착이론의 창시자는 영국의 정신 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인데, 그 시발점은 악명 높은 독재자로부터였습니다.    


그 독재자는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입니다. 그는 1965년부터 20년을 집권 했습니다. 그는 인구를 늘려야만 나라가 부강해지고 체제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실시합니다. 가임여성 1인당 4명의 자녀를 출산하도록 했는데, 루마니아에는 산업 인프라가 충분치 않았기에 부양 부담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자녀를 많이 버렸습니다. 그렇게 고아원이 많아졌고,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단지 생존만 할 수 있을 정도로 길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책의 부작용에 불만을 표하는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타자기 사용 금지와 같은 엉뚱한 정책만 시행합니다.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가운데 인구만 늘어나다보니 생활환경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부족하여 부랑자가 늘어납니다. 강도・살인・절도와 같은 강력범죄가 폭증합니다. 부랑자들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차우세스쿠에게 불만을 가졌고 민주혁명 세력에 가담합니다. 1989년 차우세스쿠는 총살을 당하고, 독재도 끝이 납니다.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차우세스쿠의 인구정책과 고아원의 실정도 알려집니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언어발달이 더딘 등 신체발달과 정신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일부는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띄었는데, 그들은 차우세스쿠의 친위대에 들어가 어떠한 임무에도 무조건 복종했습니다.


<사람에게 각인된 오리새끼>

그 즈음, 동물학자 로렌츠가 ‘각인’을 발표합니다. 학창시절 생물시험의 단골 주관식 답안이었지요. 오리새끼들이 마치 사람을 엄마로 생각하고 따르는 것 같은 인상깊은 사진이 첨부되곤 했습니다. 깨어난 새끼 오리들이 처음 보게 된 움직이는 존재를 ‘각인’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졸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입니다. 존 볼비는 오리의 각인에 착안해 인간의 아기도 주양육자에게 강한 유대감을 가지며, 주양육자도 거기에 상호 반응하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생존가능성을 높인다는 ‘애착이론’을 창시합니다.


그런데 오리의 각인에도 결정적인 시간이 있는데 2일이 지난 개체는 각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기도 마찬가지인데, 만 3세까지를 그 시기로 봅니다. 이 때 안정적으로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복구가 어렵고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루마니아의 사례로만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 아이들이 자라고 범죄율이 증가한 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존 볼비의 애착이론은 당시의 육아이론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주류였던 이론이 바로 벤저민 스포크의 엄한 육아였습니다. 다행히 1950년 이 학설이 옳지 않음을 증명하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이의 욕구에 즉각 반응함으로써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정서를 비롯한 각종 심리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애착 이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개도 사회적인 포유동물입니다. 한 때는 반려견의 사회화를 ‘복종’에 포커스를 맞추고 서열이 높은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반려견이 행동하도록 조련하는 방법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지금은 개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특성에 맞게 배려하여 상호 애정을 강화함으로써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을 점점 키워나가는 방식으로 옮겨갔습니다. 복종 vs 상호애정은 엄한양육 vs 애착양육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또한 생후 2개월간 모견의 젖을 먹고 젖을 떼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더 이른 시기에 펫 샵으로 팔려 나오는 강아지들은 질병에 취약하기는 물론이요, 사회화가 어려운 것도 바로 이 결정적인 시기와 유사해 보입니다.

   

아기 육아법이나 반려견 사육법은 개인의 철학이나 신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옳으니 다른 한쪽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기의 생리적・심리적 특징이나 욕구와는 무관하게 어른 입장에서 손이 덜 가는 방향으로 엄하게 컸거나, 주양육자의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 중 다수가 낮은 자존감・공감력 결여・불안과 우울・대인관계 어려움 등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분명 안정애착은 행복한 인생의 기초공사입니다.    


그런데 기질을 연구하는 학자 중 알렉산더 토마스와 스텔라 체스는 자신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기질을 순한 아이, 까다로운 아이, 더딘 아이로 분류했습니다. 각각 40%, 10%, 15%였으며, 나머지 35%는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까다로운 아이들은 자주 울고, 경계심이 강하고, 낯선 사람과 상황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가 키우더라도 기르기가 어려워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애착 손상이 일어나기 쉬웠습니다. 이 아이들의 특징과 예민한 아이들의 특징이 대개 일치합니다. 우리의 예민한 아이들이 저 10%에 속하는 아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내’가 육아 체질이 아니라서 아기 키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이가 까다로운 체질을 타고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3세까지를 안정애착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로 보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기에 완전무결하게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안정애착을 형성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관되게 친절하되, 좌절을 겪게 할 때는 그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진다면 그 애착은 더 견고해집니다. 만3세가 지나도, 성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손상된 애착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초 3년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수십, 수백 배가 들겠지만 의지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아기를 키우다보면 사소한 실수에도 아이의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과 좌절감이 듭니다. 특히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예민한 아이들은 순한 아이들보다 그런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예민한 아기들을 ‘울리지 않고’ 그 때 그 때 반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자신감과 낙관도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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