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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24. 2019

첫 5년을 극복하는데 50년이 걸린다

유아기 뇌&감정 발달의 비밀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보면, 어미가 새끼 동물에게 생존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먹이 구하기, 비행하기, 건기에 물 찾기, 철이 바뀌면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기 등. 동물은 본능을 토대로 어미가 살아가는 방법을 직접 보고 익힙니다. 언뜻 보면 우리 인간은 양육자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 교육기관에서 더 많은 고등교육을 받지만, 정작 중요한 가르침은 태어나서 만 5세에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로 치면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입니다. 뇌는 신경망을 통해 느끼고, 사고하고, 움직이도록 신체에 명령을 내립니다. 팔을 다치면 팔을 못 쓰게 되는데, 팔 움직임을 통제하는 뇌를 다쳐도 팔을 못 쓰게 됩니다. 뇌는 세포가 늘어나는 방식으로 용량을 늘리지 않습니다. 세포끼리 망으로 연결함으로써 처리능력을 늘립니다. 마치 전구 회로와 같습니다. 스위치를 올리면 회로를 타고 전력이 옮겨가 전구를 켜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경망이 촘촘할수록 그 뇌는 고성능입니다.    


뇌 세포는 태아 때 이미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태어나서부터는 신경망을 구성합니다. 앞서 인간의 생존 방식 차원에 관여하는 뇌의 세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본능의 뇌간, 기억과 감정의 변연계, 고차원 사고의 대뇌피질입니다. 그중 유아기 뇌 발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변연계입니다. 왜냐하면 변연계의 신경망 구성이 만 5세면 거의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신경망은 ‘가지치기’를 하고, 자주 느꼈던 감정과 관련 경험의 회로만 남깁니다. 이렇게 만 5세 사이에 익힌 감정과 인지 방식이 표준 혹은 디폴트 값이 됩니다.    


참고로 한 번 더 복습을 하자면, 변연계는 불안・공포・기쁨・슬픔 등 본능적인 감정을 담당하는데, 감정은 인지한 바를 효율적으로 기억하는 데 사용됩니다. 지나 온 날을 돌아보세요. 기억에 남는 일은 깊은 인상, 즉 그때에 일어난 감정이 강렬했던 일입니다. 변연계는 감정과 인지를 결합해서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인지력은 감정 발달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초기 5년 유아기의 감정과 인지 발달은 동물이 어미로부터 생존법을 전수받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주양육자를 통해 받아들여야 져야 그 감정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쁠 때 엄마를 보고 웃습니다. 엄마도 함께 웃어주면 그것이 기쁨이며, 앞으로도 기쁜 일이 있을 때 기쁨을 표현하게 됩니다. 위로가 필요한 슬픈 상황인데, 엄마가 오히려 야단을 치는 경험이 누적되면 아이는 슬픔을 수치스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슬픔은 느끼지 않기로 합니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풍선의 한 부분을 찌그러뜨리면 다른 부분이 부풀어 오르듯, 엉뚱한 일에서 분노와 같은 엉뚱한 감정으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상황과 감정의 연결이 이런 식으로 일그러지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과 맞지 않은 감정처리를 하게 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슬픔을 슬픔이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슬픔을 위로하는 대신 비난하는 식으로 대처합니다(심하면 감정마비와 같은 병적인 상태가 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며, 타인과의 협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지요. 공감을 잘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협조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또한 주양육자가 감정을 느끼고 감정에 대처하는 행동을 보며 그대로 익힙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과하게 마시고 폭력을 쓰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 똑같이 된다거나,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감정은 본능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처리하고 이용하는 것은 능력이며, 일종의 학습과도 같이 배우고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때 가장 많이 접촉한 주양육자로부터 받은 돌봄의 질에 따라 건강한 애착이나 자존감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을 감정하고 인식하는 방법까지 결정되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뇌는 계속해서 발달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전의 발달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폴트로 고정된 신경망을 재구성하려면 초기 5년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초기 5년을 극복하는데 50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업무도 잘 하지만 사소한 좌절도 쉽게 극복하지 못하거나, 별 것 아닌 일에 과한 스트레스를 받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 5년 동안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변연계 회로가 불안한 정서 상태로 굳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샐로비와 존 메이어는 이렇게 사람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능력을 발휘하고 성공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정서의 힘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서지능’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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