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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21. 2019

군대라도 괜찮아, 정서 안정

예민한 아이의 감정과 정서(1)

불안과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기분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불안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로 무조건 돌진하지 않게 하는 소중한 생존 도구 중 하나지요. 하지만  불안과 걱정이 평소의 기분을 점령하고 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특히나 불안과 걱정에 쉽게  휩싸이는 우리의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중대한 사안입니다.


군대에서 보았던 청년이었습니다. 의무복무 중인 병사였는데 ‘아우라’랄까요. 특유의 여유를 가졌습니다. 군대는 상명하복, 계급이 높은 사람이 명령하고 계급이 낮은 아랫사람은 복종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 군인 업무 수행이라는 공적인 범위 안에서만 하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은  명령에 공과 사를 혼합해서 하달하는데, 혼합비율은 개인의 사고력과 인격의 수준에 따라 달랐습니다. 다단한 상하 계급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신역동 에너지가 충돌하는 곳 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공식 명령과 비합리적인 갑질이 난무하는 부조리의 온상, 트라우마적인 조직 체험의 현장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였다 하면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험난한 곳에서 그 청년은 환한 빛을 뿜어내는 보호 캡슐 안에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파손되지 말라고 뽁뽁이로 꼼꼼하게 포장한 택배 짐 같이요.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능력과 계급의 책임 범위 안에서 성실히 우수하게 해내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비 시간에는 조깅을 했습니다. 부당하게 배당되는 업무에 대해서는 완곡하지만 정확한 어조로 조율을 시도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하위 계급자에게 전가하지도 않고, 타인이 전가하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자신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보호 캡슐에 들어있는 안전한 내용물 같았습니다.


그의 ‘아우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안정적인 정서 상태에 있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흔히 정서와 기분을 혼돈해서 사용하는데요. 정서는 지속적인 기분입니다. 정서가 안정돼 있다 함은  평소에 대개는 편안하고 안전한 기분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정서가 불안하다고 함은, 특별히 나쁜 일이 당장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럴까 봐 걱정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든지 불편한 기분이 지속된다는 겁니다.


정서가 불안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섞여 살아갑니다. 즉 사회 시스템이나 수많은 타인들로부터 발생하는 많은 일들 사이에서 살아가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안보다는 타인이 결정한 어떤 일들을 감당할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자신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세팅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타인발 돌발상황에서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정서가 불안하면, 자신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발생한 뜻밖의 돌발에 당황하고 놀랍니다. 그리고 또 그런 원치 않은 일이 알 수 없는 시점에 자신을 덮쳐올까 봐 걱정하고 좌절합니다. 차분히 생각하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 될 일을,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정서는 기분의 누적입니다. 기분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누구나 느낍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것처럼 슬프고 기쁘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결코 본능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여기서 정서가 안정된 사람과 불안한 사람으로 나뉘는 겁니다.

슬픔, 기쁨, 분노, 공포, 불안과 같은 원초적인 감정은 본능이지만 고도로 조직된 사회나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처하는 감정은 계발과 학습, 경험을 통해 정교화되는 식입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survive)과 삶(live)을 관여하는 부위가 다릅니다. 호흡과 같이 살아있기 위한 기본적인 생체반응은 뇌간이 담당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됩니다. 다음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를테면 포식자를 맞닥뜨리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반응은 변연계가 담당합니다. 변연계는 생존을 위한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해서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바로 그 기억을 재생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합니다. 이때 변연계는 기억을 쉽게 저장하는 도구로 감정을 사용합니다. 감정과 짝을 이뤄 경험을 저장하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당했을 때 분노가 같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 원리입니다. 이때의 감정들이 바로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여기서 나아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세련되게 대처하는 행동양식의 삶은 대뇌피질의 전두엽이 담당합니다. 대뇌피질은 학습과 계발을 통해 그 용량과 질이 달라집니다. 이 부분을 발달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본능적인 감정으로 복잡한 사회적인 외부 자극에 대처합니다. 사소한 일에 다짜고짜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상대방과 조율하면 될 경미한 충돌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나 조직, 즉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달프게 됩니다. 능력을 계발하여 목표한 바를 성취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뿌듯한 삶보다는 불안한 정서로 괴로워하는 자신을 감당하는데 에너지를 다 소모합니다.


안정적인 정서상태에 있는 것은 행복한 삶의 중대한 조건 중 하나입니다.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이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안정된 정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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