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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Mar 18. 2020

마침내 예민하지 않은 8살

예민한 아이가 안 예민해졌어요

그렇게나 예민하던 아들이 8살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두고 마침내 예민하지 않기로 했나 봅니다. 집도 아닌 낯선 곳에서, 그것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제 집처럼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기요? 제 아들 맞으세요?>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척이나 예민했습니다. 출산 당시 곁에 있었던 남편 말에 따르면, 태어나자마자 좀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는 마치 '난 누구? 여기 어디?'를 파악하는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랍니다. 아들을 키워갈수록 진땀 뺄 일이 늘어갔습니다. 안고 있을 때만 안 우는 아기, 바닥에 내려놓기 무섭게 곧바로 알고는 울고 자다가도 작은 소리만 나도 울음을 터트리며 깼습니다. 100일의 기적은커녕, 밤새 통잠을 자기까지는 두 돌 가까이 걸렸고 첫돌까지도 안아서 재웠습니다. 식성은 또 어찌나 까다롭던지 이유식 때부터 맛없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먹지도 않고 잠도 많이 안 자면서 활동은 또 어찌나 많이 하던지요.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로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하루 8시간을 공원에서 지냈습니다. 더 자라서 유치원 등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니, 수줍음은 또 어찌나 많이 타고 새로운 곳은 무조건 가지 않겠다며 버티니 난감하기가 끝이 없더군요.


7세 여름만 해도, 친한 친구 따라간 태권도장을 막상 가보니 싫다며 엉엉 울어서 3주나 아들 따라 태권도장으로 출근을 했어요. 그래도 결국은 적응을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7살이 되면 많은 아이들이 수학이다 영어다 각종 예체능이다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는데요, 제 아들은 낯선 곳은 무조건 싫다며 거부만 하니, 학교 가서 뒤쳐지면 어쩌나 하는 막심한 걱정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7살 유치원도 끝나고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취미로 동네 구민회관에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곳 선생님께서 4박 5일로 국악연수를 개최하셨습니다. 저도 특별히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아들은 다니는 학원도 없으니 저희는 주최 측의 허락을 받고 함께 연수에 참가했습니다. 아들은 할머니 집이 라든지에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맡겨지는 게 싫다며 하는 수없이 엄마를 따라나섰지요.


도착하고 보니, 연수 참가자들은 성별로 나누어 모두 한 방을 썼습니다. 마치 군대의 내무반처럼 말이지요. 커다란 다인실에서 매트를 깔고 다 함께 잠을 자고 옷도 갈아입는 듯 생활공간이 동일했습니다. '낯가림 심한 저 녀석이 어쩌나?' 큰 걱정을 했는데요, 이 아이 제 아이 맞나요? 아들은 제 집처럼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다 함께 일어나 밥 먹으러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도 아들은 느긋하게 늦잠을 자기도 하고, 그곳에서 처음 사귄 낯선 이모님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낯선 이모님과 친구가 되었어요>

도무지 까다로워 아기에게 버럭버럭 화내다 지쳐 한 권 두 권 육아서를 뒤져가며 아들을 키워 왔습니다. '엄마가 부족해서 애가 이렇게 예민한 건가?' 무수한 자책도 하고, "사내 새끼가 무슨 수줍음이 이렇게나 많아?" 하는 낯선 이의 별스런 잔소리에도 가슴 졸이기를 7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와 모르는 이의 뜻 없는 핀잔에도 쉽게 흔들리는 나 자신의 취약함을 각종 육아, 심리서적을 파며 나름대로 키워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마침내 예민하지 않은 8살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고, 제가 한 노력의 방향 또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7년간의 얘기들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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