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옆집에는 “유니콘”이 살더라
태어나서부터 아들은 그랬습니다. 마치 자신의 엄마를 정확히 구분하는 생명체 같았습니다. 저희는 분만 후 모자가 따로 지내는 병동에서 2박 3일을 보낸 후 산후조리원으로 갔습니다. 그 조리원에서는 수유 시간에만 산모 방에서 수유를 하고, 나머지는 신생아실에서 돌봐 주었습니다. 아들은 수유를 하고 나면 잠이 들었기에 그대로 카트에 실어서 신생아실로 데려다줬는데, 그렇게 3일을 하고 나니, 아들은 잠에서 깨면 엄마가 수유를 해 줄 때까지 산후조리원이 떠들썩하도록 울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과 거의 붙어서 지냈는데, 그 이후로 특별히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다들 그렇게 지내는 줄 알았습니다.
조리원을 나와서부터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됐습니다. 신생아는 하는 일이 먹고, 자고, 싸고가 다 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힘껏 젖을 빨아먹다 잠이 들고, 1시간 30분 정도 지나면 울면서 깨는데 대개는 배가 고파서였습니다. 그때 기저귀를 보면 신기하게도 자는 도중에 똥을 싸놨습니다. 기저귀도 갈고 수유도 하면 또다시 잠이 들고, 그러면 또 자다가 똥을 싸고, 배가 고프면 울면서 또 깨고... 이것을 밤낮없이 하루 24시간 하는 게 신생아의 일과였습니다.
그런데 잠도 고작 1시간 30분밖에 자지 않는 녀석이 바닥에 등이 닿기만 하면 목청껏 울어대니, 안아서 수유를 하다 잠이 든 채로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고 있는 중에도, 아파트 현관 밖 계단으로 누가 지나다니는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서 깬 양 목청껏 우니, 또 수유를 해서 재우기를 무한반복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아기의 시력은 0에 가깝고 점차 발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청력이 그렇게나 좋은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또 시끄러운 소리나 기저귀가 축축해졌을 때 말고도 자다가 울면서 깨는 때가 있었는데, 머리맡에 자신의 똥 기저귀가 있어서 불쾌한 냄새가 났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일반 상식에 비추어, ‘아기의 경우에도 시각이 발달하지 않은 대신에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민한 후각 탓일까요? 이유식을 시작하니 이제는 편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식 책에 나오는 각종 채소가 들어가는 이유식을 만들어주니, 특히 브로콜리나 비트와 같이 향이나 색이 강한 채소가 들어간 미음이나 죽은 절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쓴 채소를 갈아서 쌀가루 물에 끓인 게 당연히 맛이 없겠지!’하고 넘어갔습니다. 특히나 육아의 정석이자 트렌드인 무염식. 두 돌은 지나고 나서 소금을 쓰라는 전문가들의 권고사항인데요. 저는 6개월 무렵부터 시작하는 최초의 이유식에서부터 포기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은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법이지!’하고 또 패스했습니다.
아들은 9~10개월 무렵부터 걷기 시작하여 돌 무렵에는 제법 산책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이면, 제 뒤에 숨어서는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다시 앞으로 나와 걸었습니다. 그러다 또 다른 사람이 오면 또 제 뒤로 숨어서 멈추고, 또 숨고 멈추고... 집 앞을 벗어나는 데만도 1시간은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보호자의 돌봄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아기인 대신에, 처음 보는 사람들의 낯을 가리는 기능이 탑재돼 있나보군!’ 하고 또 패스했습니다.
돌이 가까워 온 이때에도 아들은 여전히 안고 있어야 잠이 들었기에 어떤 밤에는 한 시간을 안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잠이 든 후 눕혀 놓으면 더 이상 울지는 않게 되었지만, 옆에 같이 누워 있지 않으면 쉽게 잠에서 깼습니다. 그렇다고 TV를 켜면 불빛이나 소리 때문에 또 깹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할 일이라곤 잠을 자거나 멀뚱멀뚱 있는 일 밖에 없으니, 흡사 ‘어둠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기들은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 다른 아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 무렵이 되어서야 동네 문화센터에서 하는 아기와 엄마가 함께 하는 수업에 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아들은 통잠이 아닌 쪽잠을 계속 잤기에, 새벽 2~4시 사이에 수유를 하니 고정된 스케줄을 지키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오감발달과 관련된 수업에 가보니, 또래의 아기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옆 라인에 사는 이웃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 전업으로 육아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그 아기는 제 아들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대척점이라고 할 만큼 정반대의 아기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살가웠습니다. 이미 잠은 밤 동안에는 10시간 이상의 통잠을 잤는데, 심지어 그 아이가 자는 동안, 엄마는 자유롭게 못다 한 가사 일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며 영화 한 편 정도는 본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아이는 브로콜리와 당근을 비롯한 각종 채소로 가득한 간이 전혀 안 된 계란찜과 밥을 아주 많~~ 이 그것도 맛있게 먹는 거였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잘 먹고 잘 자고 낯을 덜 가리는 순한 아이들을 “엄마들의 유니콘”이라고 하더군요. 있다고는 하는데 진짜로 있기는 한 건지 모르는 환상적인 존재라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모든 아기들은 다 제 아들 같은 줄 알았는데, 제 옆집에는 “유니콘”이 살고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이 녀석, 무언가 잘 못 되고 있어...’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기비난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