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6개월까지는 아들을 날로 키웠습니다. 저는 분만 과정에서 골반 관절을 다쳐 혼자서는 거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친정에서 산후조리 겸 치료를 병행했지요. 저는 그 6개월 간, 모유수유 정도만 열심히 하고 대개는 어머니께서 다 돌보셨습니다. 100일까지 하루 24시간을 거의 안아서 키웠지만, 그때에도 둘이서 교대로 안을 수 있었기에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도, 이미 두 아이를 키워보신 어머니 덕분에 수월했습니다.
6개월이 조금 넘어가자 직립이나 보행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친정은 부산, 시가는 울산. 저희는 서울에서 연고 없이 부부끼리 지내던 차였습니다. 남편은 월화수목금금금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에야 퇴근을 하니, 그야말로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육아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선행학습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나마 미리 읽어둔 책은,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아이처럼> 정도였는데, 신생아 때부터 혼자서 자도록 수면 교육을 하라는 대목에서부터 아들에게는 적용이 안 됐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말리지 않으셨다면, 제 아들은 그 날 응급실에 실려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닥에 내려놓고 재우자니, 울음소리가 점점 앙칼져지고 20분쯤 되자 입술 색이 거무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에 놀란 어머니가 달려와 얼른 젖을 물리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아들은 울다 지쳐 힘이 빠졌는지 젖을 빨면서도 “흐흐흐흠”하고 수차례 훌쩍거렸습니다. 또 다른 책은 <유대인 교육법>이었는데, 아기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고 ‘교육법’은 대체 왜 읽었는지, 저도 참 예비엄마로서는 실격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나쁜 점은, 저 혼자 아기를 키워보니 제가 ‘욱하는’ 엄마였던 거였습니다. 열심히 만든 이유식을 한 입도 먹지 않겠다고 할 때, 치워놓은 집 안을 쑥대밭으로 어질러 놓았을 때, 자라고 안고 있는데 빨리 잠들지 않을 때... 등등 인지나 발달의 능력치가 제로에 가까운 순진무구한 아기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거였죠. 그리고 그게 잘 못된 일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돌이 가까워 오던 늦여름 오후였습니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하던 중, 제 아들보다 좀 더 큰 아기를 안은 제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주민에 동도 가까웠으며, 같은 전업맘인 데다, 그녀의 아들은 제 아들보다 딱 1살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고, 아이들을 동반하여 종종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를 보니,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어른을 대하듯 의견을 묻고 다음 행동을 함께 결정했습니다. 이를테면 “밖에 나가서 놀까?” 물어보고, 아이가 응할 때에 나갔습니다. 아니면 서로 대화를 하며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에 할 일을 나열해 놓고, 아들이 따르지 않으면 일단 먼저 소리를 질렀습니다. 특히 고작 돌도 안 된 아기가 남의 집에서 장난감을 어질러 놓거나 던지는 무례한 행위를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 시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라고 설명해주며 저를 진정시켰습니다.
게다가 그 집에는 다양한 육아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육아서만 제대로 안 읽었을 뿐, 직장생활을 하던 때에는 관련 서적으로 업무를 배울 정도로는 책을 가까이했습니다. 책의 대부분은, ‘초기의 부모-자식 관계가 자식의 일평생의 관계 모델이 된다’는 ‘애착육아’를 비롯하여,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기질이나 발달 과정을 파악하고 자애로운 사랑을 주라는 류의 현대 심리학에 기반 한 최신 육아 서적이었습니다.
그 책들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육아서를 접하고 보니, 그녀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현대의 교양인이었고, 저는 아이를 어른의 부속품이라 생각했던 중세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돌이켜보니 저는 그전부터 약자 앞에서 화가 터져 나오는 걸 잘 참지 못하는 지질한 인간이었습니다. 선배나 상급자에게는 싹싹하게 굴면서, 친한 친구나 가족, 부하들에게는 갑자기 화를 폭발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은 그 외의 대화법이 없어서 그냥, 부하들에게는 무섭게 하는 상급자가 카리스마라고 여기는 ‘돌아이’ 마인드를 가진 인격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부끄럽게도 내 아이를 키우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부모가 되어야 철이 든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수긍이 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깨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랬습니다. ‘혹시 내가 일관성 없이 화를 마구 내서 아들이 예민하게 된 걸까?’
귀인 1을 보고 배우며, 최신 육아서를 읽으며 1년이 갔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왜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자가 되었는지 제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답을 얻었지만, 아들의 예민함은 더 심해졌습니다. 여전히 낯을 심하게 가리고, 미식가에 소식가였으며, 기저귀를 차는 아기 주제에 똥까지 밖에서 싸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문제의 근원을 알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아들에게 쉽게 욱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아이를 망쳐가고 있는 것 같았던 그 어느 날,
귀인 2님이 등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