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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Mar 27. 2020

7세에도 엄마 껌 딱지?

예민한 아이의 사회성 발달

  아들이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책을 꽤나 즐겼습니다. 그 때마다 맞은편에서 모르는 사람이 걸어오면 제 뒤에 숨어서 그 사람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팔 거리 안에 들어오는 아기들은 물어서라도 곁을 주지 않는 것과 더불어 굉장히 특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아들이 사회적이지 않은 존재였던 아기 때부터 모르는 사람을 강하게 경계하던 특징은 점점 자랄수록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하는 모양새가 되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은 대개는 웃고 있는 아기였습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강할 뿐 대개는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안면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 때를 빼고는, 그의 표정은 확연했습니다. 울거나 웃거나. 중간은 없었습니다. 산책길에 풀 한 포기만 보아도 웃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웃고, 간식을 먹어도 웃기만 하던 아기였습니다. 그런 아들의 웃음기가 싹 사라진 사건이 생겼으니, 바로 유치원 입학이었습니다.

  입학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여전히 낯선 이를 경계하고, 얼굴만 아는 어른들에게도 인사하기를 꺼려하는 수줍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유치원 입학식 날은 달랐습니다. 입학식을 마치고 나온 아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충분히 들릴만한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건네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들 자신도 유치원생이 된 자신이 꽤나 자랑스러웠나봅니다.

  유치원 입학은 만3세하고도 6개월이 되던 무렵이었고, 아들은 그때까지 줄곧 집에서 저와 지냈습니다. 한 순간도 엄마와 떨어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유치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아들은 감이 왔습니다. 그것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아이들, 어른들(선생님)과 점심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놀이도 하며 엄마가 오는 오후까지 버텨야하는 생전 처음 겪는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아들의 작은 머리는 “그 사람들(선생님)이 나를 숨겨놔서 엄마가 찾으러 오지 못한 거야”라는 추론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상황을 불가항력의 불행이라고 여긴 것 같았습니다. 마치 포로수용소에 갇힌 자유를 잃은 패잔병 같았지요. 하원하고 집에 와서도 다음날 아침이 오면 유치원을 가야하기에 잠들기를 무서워했습니다. 유치원 현관에서는 언제나 울었고, 선생님은 그런 아들을 ‘들고’ 교실로 사라지곤 하셨습니다.

  그런 한 달을 보내고야 아들은 아침에 ‘들려서’ 헤어지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적응이라기보다는 포기 같았습니다. 반에는 아들과 비슷한 성향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하나,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남자아이와는 같이 블록 쌓기를 했다고 자주 얘기했고, 그 여자아이는 낮잠을 자려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났는데 토닥토닥을 해줬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침마다 자신을 들고 올라가는 선생님을 나중에는 무척이나 따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선생님에게 들려가던 아들은 눈물이 맺혀 붉어진 눈시울과 코끝을 하고는 그 처연한 얼굴을 선생님의 어깨에 힘없이 올려놓았습니다. 2학기가 되어서야 아들은 그제야 적응을 했고, 유치원을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저항은 하지 않고 다녔습니다. 유치원에서 매달 보내주신 생활사진에서 아들은 다시 웃고 있기는 했습니다.

  1년 과정을 수료하고 나니 아파트 재건축 문제로 유치원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첫 사회생활의 고배를 1년 내내 마시고 있는 아들이 안쓰러워, 6세에는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가장 짧은 인근 병설유치원으로 전학을 했습니다. 9시에 등원해서 1시 30분이면 하원을 하는데도 아들은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한 날이 없었습니다. 7세에도 여전히 일찍 하원을 하는데 유치원을 꾸준히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언제나 단 하나, “엄마가 보고 싶어.” 혹은 “엄마가 없는 게 싫어.”

  이쯤 되면 분리불안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안정 애착을 형성한 유아라면 30개월 즈음에 ‘대상항상성’을 획득합니다. 즉 엄마와 얼마 정도는 떨어져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들은 처음 입학한 42개월부터 70개월이 지난 때까지 엄마와 떨어지기를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유별난 것인가, 아니면 제가 잘못 키워서인가를 고민하며 같은 반 학부형들에게 물어보니 두 아이가 아들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영아산통을 앓으며 울었다던 여자아이와 제 아들과 수 조작 영역에서 놀길 좋아하는 남자아이였습니다. 여아는 중학생인 오빠가 둘이나 있지만, 7세 후반인 지금도 엄마 없이 오빠하고만 있는 건 불안해합니다. 그 여자아이의 학부형은 그런 아이를 배려해서 학원과 같이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활동은 시키지 않으십니다. 다른 남자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학습활동만 골라서 학원을 몇 군데 다닙니다. 아들은 1주일에 한 번 하는 문화센터 미술수업을 9개월이나 다니다가 그만 두었고, 좋아하는 친구 따라 간 태권도장도 3주 만에 포기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무서운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학원을 좋아하지 않을 뿐, 이 아이들은 모두 놀이터에서는 아이들과 섞여 잘 놉니다. 특히 여자아이는 다정다감하여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엄마 껌 딱지’라고들 합니다. 엄마에게 껌처럼 들러붙어 있다는 말이죠. 아무래도 이 말은 아기들이 보호자가 돌봐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엄마에게 붙어 지내는 모습에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 시기의 아기들은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만 않아도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남자들이 군 생활 중에서 화장실에서 초코파이 먹은 일화를 상처만 남은 훈장처럼 꼽듯이, 엄마들은 아기를 안고 화장실에서 큰일을 본 얘기를 상처만 남은 훈장처럼 얘기합니다. 이런 현상은 아기들의 인지발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기는 생후 12개월 정도는 되어야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 대상이 거기 있다고 인지할 수 있습니다. 학술용어로 이런 능력을 대상영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보이지 않으면 엄마가 없어진 줄 알고 목청껏 우는 겁니다. 아기들이 별것도 아닌 ‘까꿍 놀이’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이유도, 단순히 보였다 안 보였다가 아니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굉장히 진귀한 체험을 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2개월의 대상영속성은 완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눈앞에 보이는 공에 보자기를 덮어두어도 보자기 아래에 공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정도입니다. 시공간의 변화가 포함된 복잡한 조건을 부여해도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존재함을 인지하기까지는 24개월이 걸립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가 존재함은 물론이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불안을 달래며 놀면서 기다릴 수 있는 때는 대략 30개월경입니다. 이 능력이 생기면 아이는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새로운 탐색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엄마에게 붙어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를 지났다고도 볼 수 있지요. 생존능력이 없는 아기가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기 위한 강한 유대감을 ‘애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애착의 결정적인 시기는 만3세까지라고 보았는데요, 바로 이 능력이 생기는 시기가 30개월 정도로 만3세 경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은 이런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엄마에게 붙어 있으라고 먼 조상들로부터 유전자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그 결과 ‘엄마 껌 딱지’가 되지요.

  하지만 7세나 된 우리 아이들,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는데 유치원이나 학원 다니는 걸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아이들과 달리 엄마랑 떨어지기 어려워서 등원하길 싫어하고 학원을 거부한다면 정말로 큰 문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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