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휴가의 기억들
직장이라면 누구나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여름휴가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지금까지 매년 한 번은 꼭 9~10일 정도의 긴 휴가를 내어 새로운 여행지로 떠났다. 평일에 5일 휴가를 쓰고 앞뒤로 주말과 공휴일을 붙여 직장인으로서는 꽤 긴 일정을 확보했지만, 막상 떠나보면 관광과 휴식을 모두 챙기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돌아올 때마다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곤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꾸준히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건, 아이 없이 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딩크 생활방식 덕분일지도 모른다.
2015년 신혼여행으로 간 곳은 호주 케언즈였다. 처음으로 함께 떠난 긴 여정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다채로운 산호와 물고기를 마주한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2016년엔 스위스를 찾았다. 결혼하기 전에 각자 스위스를 다녀왔지만 다른 유럽여행을 하던 중 2일~3일 머물렀던 곳이라 다시 함께 오랜 기간을 가고 싶었던 나라다. 이곳저곳을 기차로 여행하며 보는 풍경은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2017년에는 인도네시아 길리섬으로 향했다. TVN의 예능 '윤식당'을 보자마자 꽂혀 떠난 우리는 작은 섬에서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여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자동차가 없는 길리섬의 고요함과 매일 바다 선베드에 누워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는 일상은 서울에서 바쁜 삶에 지쳤던 우리에게 큰 힐링을 주었다. 2018년에는 럭셔리한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몰디브를 찾았다. 비록 유명한 리조트가 아닌 저렴하고 작은 섬이었지만, 맑은 바다 위 수상 방갈로에서 맞이한 아침은, 그야말로 꿈에서만 그리던 풍경이었다.
2019년 호주 울룰루(에어즈락)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호주의 아웃백 지역으로 사막과 협곡을 트레킹 하고,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유명한 울룰루 바위를 마주했을 때는 알 수 없는 경건함 마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밤에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지평선 위부터 시작되는 많은 별들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2020년 3월 초, 코로나가 닥치기 직전에 우리는 사이판으로 갔다. 당시에 사이판에도 관광객은 이미 전멸한 상황이라 유명한 PIC리조트를 전세 낸 듯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당시 리조트에 문의했을 때 그 큰 리조트에 숙박 중인 격식을 20 객실이 안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해외여행은 당분간 갈 수 없었다.
2021년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 대신 국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긴 휴가 대신 짧은 휴가로 경주, 통영, 제주등을 다녀오며, 국내여행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2022년에는 제한적이지만 다시 해외여행의 기회가 생겨 다낭을 찾았다. 바다와 도시, 음식과 사람 모두가 균형 있게 어우러져 있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행지였다. 코로나로 다시는 해외여행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2023년에는 꼭 다시 가고 싶었던 나라를 찾아 두 번째 스위스를 갔다. 첫 여행과 달리 관광지를 지양하고, 여러 작은 트레킹코스들을 걸으며 스위스를 더욱 깊게 즐겼다. 2024년은 직장에서 둘 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기에 발리의 리조트에서 휴양을 했다.
그리고 2025년의 휴가는 곧 출발할 예정이다.
이처럼 매년 다른 나라와 도시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아이 없이 둘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보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더 알아가고, 대화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만족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만, 직장인 신분으로 만들 수 있는 9일~10일의 시간은 늘 아쉽다.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관광지를 둘러보다 보면 휴식은 뒷전이 되고, 휴식을 충분히 즐기면 관광은 놓치기 쉽다. 결국 여행의 끝은 아쉬움이다. 그래서 첫 번째 은퇴 후, 휴식기에는 한 달 이상 머물며 한 도시의 일상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
딩크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여행은 단지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여행은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확인하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