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꿈이었어요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에 메일을 받았고 오늘까지 만 6일 차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왕초보 작가다. 그 사이 발행한 글은 총 6편. 그 6편의 글은 4일 동안에 쓰였다.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는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지?
글의 퀄리티는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편의 글을 발행할 수 있었던 건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던 덕분이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다음날, 여행을 떠났다. 작가가 된 기념으로 떠난 건 아니고 이미 예전에 계획된 여행이었다. 다들 잠든 고요한 비행기 안에서 써놓았던 글의 초안을 다듬었고, 여행지에 도착해 밤바다를 보며 글을 완성시켰다. 일상 속에서 분리되어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쓰고 싶은 말들과 써 내려갈 이야기들을 골라냈다.
일주일의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지금, 남은 숙제는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조각조각 떠오르는 대로 적어 내려 가도 필연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다듬고 엮어 예쁜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은 필요하다. 과연 내가 출퇴근을 하며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출퇴근이 3시간이 걸리니까 어차피 그 시간 동안 붙잡고 있을 핸드폰, 그때 액정을 좀 두들긴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내 짧은 집중력이 습관적으로 인터넷 바다를 헤매지는 않을지 자신은 또 없어진다. 그래도 느리더라도 내 속도에 맞춰 펼쳐 놓은 이야기들을 잘 매듭짓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여태껏 써온 글들은 주로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짧은 메모나 일기와 같은 게 주다. 다르게 말하면 세상에 내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한 글만을 써왔다는 거다. 브런치에 올라가는 글은 누군가가 읽도록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이라 여태까지 해왔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써놓고 끝이 아니라 이리저리 매만져보고 이런저런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쓴 문장들을 새삼 붙잡고 있다 보니 그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첫째로 나는 문장이 길다. 의식하고 단문으로 쳐내지 않으면 끝도 없이 문장이 늘어진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웹소설이 그러하듯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이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거고 독자들을 내 글의 마지막까지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라고 쓰는 이문장 역시 의도적으로 잘라내지 않으니 굉장히 길다 하하.)
두 번째로 나는 접속사, 부사를 많이 쓴다. 그래서 퇴고를 할 때면 접속사를 지우고 문장이 매끄러운지를 두 번 세 번 본다. 세 번째로는 불필요한 수동 표현을 많이 쓴다는 거다. 날 것 느낌의 문장을 쓰고 싶어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수동 표현은 때때로 보기 매끄럽지 못해 이 습관은 꼭 고치고 싶다. 네 번째로는 식상하고 상투적인 표현들을 많이 쓴다는 거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한 건지 인풋이 한참 모자란 건지 단어나 문장이 심심하고 확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부족하다.이건 노력해서 되는 부분인지 재능의 영역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써보고 다듬으며 제일 발전하고 싶은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의외의 부분에서 나를 제일 좌절시키는 건 바로 띄어쓰기이다. 하하. 띄어쓰기를 왜 이리 틀리는지. 맞춤법 검사 기능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다. 초보 작가의 갈길은 이렇게 멀다.
이제 막 초보딱지를 단 내가 감히 노벨문학상을 꿈꿨던 적이 있다. 대학생 때까지의 나는 이야기를 좋아해 아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책에 있는 이야기들을 골라 읽는 아이였고, 중학생 때는 펄벅의 대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고전문학 독서광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도서부원을 했다. 점심시간이면 빨리 밥을 먹고 도서실로 가서 책을 펼치는 누군가의 열혈 독자였다. 대학에 다닐 때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붐과 함께 일본문학이 유행이었는데 도서관의 일본문학 코너 앞에 앉아 도장 깨기 하듯 거기에 있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으며 등록금을 낸 값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국어책에서부터 고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자란 내 꿈은 노벨 문학 수상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 이룰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그것처럼 느껴져서 '언젠가는 받고 싶다'라고 막연하게 동경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문학소녀는 삶의 괴로움에 짓눌려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꽤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 40대를 눈앞에 두고 지금, 브런치를 통해 작가라는 이름을 간신히 얻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을 바랄 때에는 그저 나도 멋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추상적인 마음만 있었다지만 지금은 무엇을 바라며 글을 쓰고 있을까?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인정받는' 기분인 것 같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누군가가 ‘당신의 글은 그래도 읽어줄 만하군요’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첫 번째 라이킷과 댓글을 받았을 때에도 ‘내 시간을 들여 당신의 글을 읽은 게 아깝진 않군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 칭찬은 고레도 춤추게 한디고 하지 않았나.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이유는 왜일까? 그리 길지 않은 고민의 끝에 닿은 결론은 글을 통해 내 삶을 ‘이해’ 받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것이다.
소위 막장드라마로 유명한 김순옥 작가님이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죽으려고 결심했던 누군가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한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약해진 누군가의 마음을 아주 잠시나마 위로해 주는 글. 어쩌면 오늘의 나의 글 쓰기는 과거의 나를 살게 한 노래와 이야기들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초보 작가의 걸음이 꾸준하게 계속되길 오늘의 내가 나를 응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