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살 것인가 글 쓰는 기계가 될 것인가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by 아침이




근래의 나는 소위 말하는 ‘돈미새’ (돈에 미친 새X)로 살고 있다.

사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작장인들이 그러하듯

회사 다니기 싫어서




코로나로 온 세상이 시끄러웠을 시절쯤 난 참 운 좋게도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백수로 지냈다. 평일 한낮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카페에 앉아 이것저것 끄적거리다가 답답해지면 청계천에 앉아서 물멍 하고, 그것도 무료하면 내키는 대로 비행기표를 끊어 해외로 훌쩍 떠나기도 하고, 아주 여유 있는 백수생활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백수로 유유자적 놀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돌아보면 몹시도 그리운 시절이다.


그때의 나는 이대로 영원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사회로 복귀할 수 없을 것 같단 불안감과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실패감과 싸우며 괴로운 밤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런 건 싹 잊은 채로 말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때의 괴로움은 흐릿하고 일기장 위에는 즐거웠던 일들만 문자로 남았다. 그렇게 좋았던 느낌만 남은 탓에 평일 자유를 향한 갈망은 마음 한 구석에 늘 고여 있다. 행복했던 시절은 끝났다.


현재의 나는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있다. 때문에 불행하게도 회사에 다녀야 한다. 자유와 밥값을 해야 된다는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들이 깊어졌다. 출퇴근 꼬박꼬박 하는 거 말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제활동은 뭐가 있을까? 퇴사를 갈망하는 마음을 가득 모아 아주 열심히 고민했다.


흔히들 말하는 돈의 파이프라인 패시브인컴, 불로소득. 대체 뭐가 있지? 고민 끝에 몇 가지 가이드를 세웠다. 우선 일차적으로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서 찾기로 했다. 정보 수집에 들일 시간도 줄어들 것이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시작하기도 쉽고, 문제가 생겨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두 번째로는 '회사와 병행이 가능한 것'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전까진 월급이라는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벌지 않으면 난 쫄쫄 굶어야 하니까. 세 번째로는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야 할 것(제일 중요 별표 다섯 개!!!)'였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쭉 나열하고 세워놓은 기준에 따라 추려보니 유튜브 쇼츠, 소싱 사업, 글쓰기 세 가지가 남았다.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소싱사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역직구가 해볼 만해 보였는데, 한국에 있는 물품을 해외 오픈마켓을 통해 해외로 판매하는 거다. 이미 나는 모플랫폼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케이팝 관련된 물품들을 팔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겠지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시작하니까 어려웠다. 개인 간의 거래일 때는 배송비나 판매대금 정산 같은 부분이 문제 되지 않았는데 플랫폼을 끼고 하니 예상치 못한 제약들이 있었다. 공부를 했음에도 공부해야 할게 자꾸만 튀어나왔다. 자신 있게 시작했는데 생각 같지가 않았다. 역시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은 없다. 겉으로 볼 때는 알 수 없고 직접 뛰어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큰 깨달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어진 도전은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로 수익 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먼저 브런치를 선택했다. 목표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하기. 당연히 출간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도전의 근거는 이것 역시 이미 모플랫폼에서 글로 소소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미 생활로 끄적이듯 쓴 글의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 아예 각 잡고 쓰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그곳과 브런치는 플랫폼의 색깔도, 올리는 글의 종류도 아주 다르지만 말이다. '막연한' 자신감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도전한 감상은 어떠하냐고? 오늘로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지 꽉 채운 2주 차다. 와 아직 그것밖에 안되었다고? 작가로 선정된 이후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며 했던 생각은 '아 생각보다 어렵다. 이거 계속할 수 있을까? 괜히 시작했나?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군.'이 주였으니까. 체감상 한 달은 훨씬 지난 거 같았는데 고작 14일 밖에 안 지났다니! 아무래도 사람이 체감하는 것은 실제 사건보다 조금 부풀려지는 게 있음이 분명하다. 회사 수습기간도 3개월인데, 한 달도 채우지 않고 벌써부터 포기할 생각을 했다는 게 참 황당하기도 하고 나 성격 참 급하구나 싶기도 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진 않다. 다만 매일 꾸준히 글 쓸 시간을 만드는 게 어렵다. 떠오르는 것들은 있는데 그걸 낚아채서 화면 위로 새기는 작업이 잘 안 된다. 뭐 그냥 출퇴근 시간에 쓰면 되겠지~ 했던 게 얼마나 안일한 마음이었는지! 역시 해봐야 아는 거였다. 브런치의 성실한 작가가 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야만 한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자판을 두드릴 시간을 낸다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었고 나는 유혹에 약한 사람이었다. 역시 뭐든지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도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을 연연하게 만드는 '라이킷'. 다른 작가분들이 라이킷에 괴로워하고 라이킷에 연연하는 자신을 극복했단 글을 읽으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것 역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고, 나는 이미 다른 플랫폼에서 몇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구독자를 얻기까지 나도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는 시간들이 있었고 이제는 그 시간들을 다 지나서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에 딱히 연연하지 않는 마이웨이 창작자가 되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라이킷이 얼마건 아무렇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혀 아니었다. 플랫폼의 색깔이 다르고, 내가 쓰는 글의 색깔이 아주 다르다 보니 라이킷의 숫자를 헤아리며 '내 글이 별로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또 하고 있더라. 아,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란.


더군다나 브런치는 플랫폼 특성상 누군가 라이킷을 눌러준다고 해도 그것이 순수한 like lt 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맞라이킷을 바라며 눌러주신 건지, 아니면 정말로 내 글이 좋아서 눌러주신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고뇌는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글에 대한 반응이 있어도 순수하게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는 확신이 없으니까. 라이킷을 눌러준 분들 한 명 한 명 붙잡고 제 글이 재미있나요? 제 글이 브런치와 어울리는 글인가요? 물어보고만 싶다.



그래서 생각의 전환을 해봤다.


만약에 회사였다면?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는 게 내 업무였다면? 회사였으면 글감이 떠오르건 말건 누가 좋다고 해주건 말건, 내가 만들어 낸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쨌든 때가 되면 ‘발행’ 버튼을 눌러야 했을 거다. 그것이 회사라는 곳이니까. 완벽한 퀄리티이어도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아예 쓸모없는 것이 되는 곳이 회사다.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마감기한 내에 완성시켜 세상에 내보내면 그것으로 충분한 곳이 회사다. 완벽하게 시작하지 못했고 철저한 준비가 되지 않아 삐걱거리는 채로 세상에 내보냈지만 박수를 받는 순간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순간들을 종종 마주친다.


글쓰기도 바로 이와 같아야 된다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일명 ‘내림’이 오면 글을 잘 쓴다. 흔히 '영감'이라고들 표현하는 그것 말이다. '내림'이 오면 앉은자리에서 만 자도 후루룩 써진다. 30분이면 그럴싸한 3천~5천 자짜리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마 다들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 내림이란 게 오지 않으면 영원히 써지지 않는 순간도 있다. 분명 구상을 다 해놓았고 시작과 끝도 있는데 그 시작의 첫 삽이 떠지지 않아 도저히 시작되지 않을 때. 그런 때도 있다.


하지만 회사라고 생각해 보자. 내가 담당인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느는 이유만으로 마감전까지 백지인 워드 화면을 열어놓고 깜박거리는 커서만 바라본 채 내림이 오시기만을 기다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빈 화면에 써야 할 것은 제안서가 아닌 경위서 혹은 퇴직서가 될 것이다. 안 써진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일단 뭐라도 써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무엇이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회사다.


그리고 웃기게도 그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단순한 문서 작성만 해도 그렇다. 사회 초년생일 땐 자신감이 아주 바닥에 있어서 메일 하나를 보낼 때도 눈치를 많이 봤다. 다른 사람이 써놓은 걸 뒤적거려 보고, 구글에서 ‘업무 메일 보내는 법’ 도 서치해서 흉내도 많이 냈다. 메일 하나일 뿐인데도 쓰고 지우고를 참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2년 차를 넘긴 이후로는 메일 정도야 아주 껌이다. 제안서도 기계처럼 쭉쭉 뽑아낸다. 다양한 상황의 무리한 요구에도 텍스트 대치라도 해놓은 듯이 바로 나온다. 단순하다. 많이 했기 때문에 숙련된 사무직 노동자가 되어서다.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만약 예술가였다면 내 이름을 단 세기의 역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거다. 고심하고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며 점 하나까지 완벽하게 찍힌 작품을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눈물로 밤을 새우고 창작의 고통 속에 몸부림쳤을 거다. 걸작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도자기를 깨트리고, 컨버스를 찢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진 않다.


배고픈 예술가보다는 월급이 제 때 나오는 배가 고프지 않은 직장인이고 싶다. 내가 쓴 글로 수익을 내고 싶고, 기왕이면 내 책을 본 사람이 아이고 지구야 미안해 쓸데없는 걸 인쇄하느라 아까운 나무가 낭비되었구나 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그렇게 수익을 내고 싶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아닌가.


예술가로 살 것인가, 직장인이 될 것인가?

나는 글 쓰는 기계, 글 쓰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초보 작가는 오늘도 직장인처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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