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는 유쾌한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잘하고, 즐겨한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잘하고 재미있게 한다고 후한 평가를 내려준다. 그런데 브런치 화면만 열어 놓으면 그런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잔머리 하나 없이 머리를 올려 묶고 끄트머리가 뾰족하게 솟은 안경을 쓴, 딱딱하고 깐깐한 B사감이 나타난다. 감정은 사라지고 로봇보다 더 무미건조한 문체가 등장한다. 문장은 짧고 수식어는 전무하다. 뭐랄까 좀 많이 건조하달까. 현실의 나는 그렇게까지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닌데, 흰 화면을 열어 놓으면 감정이 꽉 막힌 것만 같다. 답답하다. 왜일까? 전혀 모르겠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고 시선을 의식해서 그러는 걸까? 아직 나를 온전히 보여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니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사람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이상한 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전혀 모르겠다. 편하게 쓰는 게 뭐지? 나는 날 것의 이야기를 잘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써놓은 글을 보면 에세이라기보다는 설명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런 글에도 누군가 라이킷을 꾸준히 눌러주는 것을 보면서도 내 글이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맞라이킷을 원해서 눌러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서 글을 쓰는 건 마치 필라테스를 하는 기분이다. 몇 해 전 꽤 오래 1:1 강습으로 필라테스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이 호흡에 대해서 설명할 때면 ‘갈비뼈를 열고’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필라테스에서 종종 쓰이는 표현인 것 같았는데 몸통은 고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갈비뼈를 열수? 있는 거지? 늘 의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터치를 느끼며 몸 안쪽의 횡격막이나 근육등을 움직여보려 애쓰곤 했었다. 글을 쓰면 그때랑 같은 기분이다. 꽉 막힌 기분.
나도 무겁지 않으나 감정적이고 날 것의 느낌을 나는 글을 쓰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감정이 퇴근길 올림픽 대로처럼 꽉 틀어 막혀 있는데 이걸 어떻게 뚫는단 말인가. 어쩌면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는 거 아닐까? 그냥 영원히 건조 오징어처럼 씹으면 이만 아픈 딱딱한 글만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만큼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내 인생이 팍팍하고 무미건조하니까 말랑한 글이 안 나오는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다의 연속.
몇 개의 문장을 적었다가 지운다. 지우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문장을 지우고 수식어를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워드가 종이였다면 수많은 지우개질로 인해 너덜너덜 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며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동안 너덜너덜해지는 건 내 얄팍한 마음이다.
분명 예전에는 가볍고 유쾌하고 날것의 글을 쓸 줄 알았던 것 같은데. 내가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왜 이런 글 밖에 못쓰는 거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만 끝이 없다. 줄줄이 사탕 같은 진부한 표현 외에 깔끔하고 손에 딱 붙는 표현은 영 떠오르지 않는다. 인풋이 부족해서일까?
어떤 ‘내림’이나 ‘필’ 같은 게 오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쓰기의 신’은 이미 나를 버린 것 같다.
이대로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저 설명문에 불과한 글들을 묶은들 무엇이 될까? 불안의 불 위에 올라간 마음은 자꾸만 쪼그라들어 까맣게 타기 일보직전이다. 답답함의 눈물로 불안의 불을 애써 꺼보려 한다. 눈물이 난다는 것은 감정이 표출되었단 뜻이니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하다.
하지만 오늘도 답답한 마음을 꾹 참으며 무언가를 쓴다. 무언가를 쓰다 보면 정말로 내가 싶은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하게 된다.
생각의 끝에 이르면 글을 왜 쓰기로 했지? 글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더라?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이루려고 했던 게 뭐지? 근본적인 물음에 닿는다. 하지만 이젠 안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는다면 결국엔 안 해도 될 이유들만 튀어나온다는 것을. 얼른 생각을 멈춘다.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칭을 킵고잉 했던 김연아 선수처럼 글쓰기도 아무 생각 없이 킵고잉 하는 동안 내면의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제발.
비록 지금 쓰고 있는 프로그램의 하단에서 현재 글자수가 2,481 자라고 알려주는 것을 보며 3,000자는 채우고 발행하고 싶은데 또 뭐라고 말을 늘리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글쓰기도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게 맞겠지?
매일같이 꾸준히 3,000자 정도씩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쓸 수 있는 게 맞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초보 작가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