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봇 May 05. 2020

01. 탄산수가 흘러넘쳤지만, 나는 콧노래가 나왔다.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밤 12시 경이었다. 탄산수를 마시기 위해 뚜껑을 열었을 때, 내용물이 흘러넘쳐 바닥을 적셨고 침대에도 일부 튀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콧노래를 부르며 휴지를 집어 들고 흘러넘친 탄산수를 닦아내고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일이 일어났지만,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01. 탄산수가 흘러넘쳤지만, 나는 콧노래가 나왔다.


 분명 평소같았으면 다음날은 출근이었고 적지않은 업무 스트레스로 짜증을 냈을 것이다. 바닥을 닦아야한다는 귀찮음과 침대에 얼룩지듯 젖은 그 모양새는 눈 밖에 났을 것이고, 끈적이진 않겠지만 손으로 병을 잡았을 때 묻는 탄산수의 축축함이 그리 좋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탄산수의 탄산이 필요 이상으로 목에 솟구쳐 눈물까지 핑 돌게했고 피곤한 하루를 장식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넘친 탄산수를 보면서 콧노래를 불렀고 바닥을 닦으면서 오늘 하루 동안 쌓였을 먼지도 같이 닦이길 바랬으며, 닦은 면을 바라보고 거뭇거뭇한 먼지를 보며 뿌듯해했다. 같은 아침의 시작, 그리고 다를 것 없는 9시 출근 6시 퇴근의 일상 안에서 오늘의 내 기분을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되짚었다.


 그날은 세 가지가 달랐다. 첫 번째는 모닝커피, 두 번째는 브런치, 그리고 넘친 탄산수.




[공짜 모닝커피]


 최근 너도나도 한다는 주식을 시작했다. 동학개미운동의 참가자인 나는 주식에는 지식이 없는 젬병이자 문외한이었다. 꼴랑 200만원 남짓의 돈만 넣어두고 십년, 이십년이 지나면 부자가 될 것이라 헛된 망상을 가진 우량주를 붙잡은 문외한 개미 말이다. 그렇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아침부터 뉴스를 다 봤다. 출근 길의 지하철에서 뉴스와 증권관련 정보를 일부 확인했고 관련된 회사의 주가를 확인했으며, 시간외 단일가로 10만원 어치의 주를 구매했다. 그리고 3,500원을 벌었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하나 주세요."


 커피가격은 0원이었다. 영수증에는 3,500원이 찍혀있었지만 공짜커피였다. 항상 먹던 카페의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산미와 쓴맛은 평소보다 덜했고 향은 더 향긋했다. 아침의 시작이 좋았다.




[배부른 때의 브런치]


 휴일이 몰린 주간에는 마케팅팀은 더 바쁘다. 휴일 주간에 노출해야 하는 프로모션이나 기획안들은 보고가 완료 되어야하고,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 점심 식사 후 분주하게 메일을 작성하던 때에 휴대전화의 진동이 요란하게 두 번 울렸다. 업무용 메일인가 싶어 노트북으로 메일을 먼저 확인했지만, 메일은 없었다. 휴대전화를 바라보자 얼굴을 인식하고 자동으로 켜진 화면 상단에 카카오톡은 떠 있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작가가 되셨습니다.」


 대신 늦은 브런치가 도착해 있었다. 조금 더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싶어서 도전했던 브런치 작가 지원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겨우 한 편짜리 내 마음을 담은 에피타이저의 답례로 브런치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 도착한 아주 배부른 브런치, 집에서 배부른 일을 할 생각이 가슴이 뛰었다.





[넘친 탄산수 옆 닭가슴살]


 회사를 마치고 운동을 다녀왔다. 운동을 다녀와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하여 닭가슴살을 냉동실에서 꺼냈고 성의 없이 접시에 툭 던져 전자렌지에 넣었다. 대충 3분 남짓한 시간으로 레버를 돌려놓고 운동복을 정리했다. 기운빠진 몸을 침대에 드러눕히고 핸드폰을 적당히 만지다보니, 어느 새 집 안이 닭가슴살의 냄새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전자렌지의 가동음이 멈췄고 아주 뜨겁게 달궈진 접시를 티셔츠의 끝자락으로 조심조심 잡아 테이블로 옮겨놓았다. 냉장고를 열자마자 보이는 맥주캔을 잡았다가 이윽고 손을 놓고 옆에 있는 탄산수를 대신 집았다.


'그래, 운동을 했는데 맥주는 좀 그렇지.'


 원래 나는 나를 위한 보상이라며 운동 후 마시는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어쩌면 많이 마셔서 좋지 않을 맥주가 아닌 탄산수를 선택했다. 나의 그런 결심에 즐거워하며, 탄산수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탄산수의 뚜껑을 열자 흘러넘쳤고 흘러넘친 탄산수가 바닥과 침대를 적셨지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휴지를 찾았다. 먹음직스러운 닭가슴살 때문이었다.


 


  공짜 모닝커피와 배부른 시간에 도착한 브런치, 그리고 넘친 탄산수 옆의 닭가슴살은 내가 만든 행복이었다. 평소의 평범한 일상에서 아주 약간의 변주만 주었을 뿐인데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괜찮은 하루가 되어있었다.


 본격적이지는 않아도 아주 작은 첫 걸음의 노력으로 얻은 모닝커피.

 본격적인 도전으로 이루어 낸 배부른 때의 브런치 작가.

 즉흥적이었지만 나쁜 습관 대신 얻은 넘친 탄산수.


 아주 크지 않은 일상의 소소한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나의 행동들. 이것도 행복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