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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May 12. 2020

02.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눈치를 보지 않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눈치를 보는 연습을 하고 그에 익숙했지 한 번도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적이 없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그랬고, 좋은 사원이 되기 위해서도 그랬으며, 누군가의 좋은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항상 눈치를 봐왔다. 물론 언제나 결과는 좋았고, '눈치가 빠르네?' 와 같은 찬사를 들으면서 센스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피곤했다.


 피곤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감정이나 현재상태를 눈으로 읽어야한다는 것이고 다음 나의 행동을 그 사람의 상황에 맞추어야한다는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좋은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는 해야했던 일이다. 어느덧 매사에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했고 피곤하지만 나를 숨기고 남에게 맞추는 일은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봐야한다고만 배워왔고, 안해 본 거를 어떻게 잘하겠어요?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을 오늘부터 해봐요."


 허를 찌르는 말. 그래서 아무런 말도 않고 누구나 쓰고싶어 하는 금요일에 연차를 올렸다. 팀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눈치도 주지 않았으며, 조용히 승인만 해주셨다.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02.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이라는 인생에 들어보지 못한 익숙지 않은 문구를 곱씹었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고, 사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표현하는 감정이 진짜가 아닌 비율이 높아진지도 꽤 오래되었고, 대차게 화를 내본지도 울어본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그럴 일이 없을만큼 행복했었나 싶어 뒤를 돌아봤지만, 그랬으면 내가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득 면접에서 '행복'에 대한 나의 철학을 마지막 할말로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사람이 행복할 때 100이 아닌 120의 성과도 낼 수 있고, 120의 열정도 낼 수 있습니다."


 1년 차에는 정말 120의 열정을 가지고 일했던 것 같다. 원하던 것을 가졌으니 행복했고 그래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었다. 회사 들어가면 편해질 수 있고 돈도 버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틀리지 않은 말들에 공감했으며,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들도 2년차엔 영위했다. 그러나 적응하면 할수록 그리고 나를 지워야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열정과 행복도 마찬가지로 지워져갔다. 내 인생이 조금은 가련해질 즈음에 회사원이 아닐 때 하고 싶던 게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후회해."


 이미 익숙한 클리셰다. 나에게 새로운 미래의 이정표는 주위사람들과 부모님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고, 그들은 그에 대해서 끊임없이 가야하는 방향이라며 타이를 것이다. 


"사실 모든 일을 이뤄도 다 후회하던데, 늦어서 더 후회하기 전에 덜 후회하려고요."


 당신들의 말대로 삐딱선 안타고 잘 자라온 대기업의 회사원 B가 되었으니까, 행복해지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만 이제는 책임이 주어지는 자리이니까, 단순히 해야할 것도 하지 않고 누리려고만 하는 '자유와 방종'이 아닌 해야할 것은 마무리하고서 얻는 진정한 '여유와 행복'을 찾는 회사원 A로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먼저 들어가볼게요."


 저녁 6시 10분, 노트북을 덮고 사람들이 다들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퇴근한다. 뒤는 보지 않고 내게 주어진 과업을 마무리한 것에 만족하고 그 날 먹을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저는 이 일을 할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행복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 갈무리에 내가 이야기했던 마지막 말처럼, 진짜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120의 열정을 다시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 한잔과 때에 어울리지 않게 얻은 브런치로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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