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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Dec 08. 2021

나는 제법 많이 지쳤다

Ep83. 김필&곽진언 - 지친하루


"서른은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지난 1월, 주변에서 서른이 된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내가 대답했던 말이었다. 작년의 말미는 조금 우울했지만 올해가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행복하고 열심히 살리라고 다짐했었다. 수플레의 첫 글도 새로운 바람과 함께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당차게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1년에 대해서 어떻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아주 잘 보낸 1년이었지만,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번 년도는 내게 있어서 성장을 이룩한 큰 한 해였다. 가장 큰 성과라 함은 이직이었다. 그것도 아주 괜찮은 기업으로의 이직. 


 올해 더 배우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기 때문에 전 회사에서도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혼자 파곤했었다. 업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고 책을 보고, 유튜브나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 있는 강의들을 보았다. 다음 날이 되면 업무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성과를 보이는 것이 재미도 있었고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보단 더 좋은 곳에서 배우고 싶어졌고 처음으로 이직이라는 욕심이 생겨 플랫폼에 내가 해왔던 업무의 포트폴리오를 업로드 했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가 시발점이 되어 면접을 보았고 나는 이직을 했다.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기 까지 내게는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5일이었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정말로 짧았고, 나는 그렇게 집에서 잠을 조금 자고, 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그리고 혼자 호캉스를 하루 정도 지내면서 아주 짧은 여유를 즐겼다.


 그 짧은 여유 끝에 보다 더 희망찰 것이라 생각했던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느낀 것은 정말 달랐다.


 첫째, 내가 해왔던 업무들과는 다른 접근과 다른 방식, 그리고 나는 한참이나 모자라다는 것.

 둘째, 경력직이라는 것은 결국 어려운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것.

 셋째, 제법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하기에 책임감이 커졌다는 것.


 나는 내가 모자라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오래걸렸다.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업무들과 그리고 직전 회사에서 받은 인정 때문에라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이런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된 것은 업무 중 제법 큰 실수를 하나 하고나서 였다.


 그리고 내게도 제법 많은 일들이 주어졌고, 성과를 내야만 했다. 분명 주 40 시간이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업무 시간 외적으로도 일에 대해 고민도 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강제도 아니었고 강요도 아니었지만, 어렵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내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을 때 그것이 온전히 나의 성과가 되고 온전히 나의 100% 기여도가 되고 되기에, 책임감이 커졌다는 것이었다. 원래 한국 대기업의 그 특질적인 정치도, 성과를 포장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온전히 나의 몫으로 고군분투 해서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그 책임감은 생각보다 토종 한국인의 아주 한국스런 기억을 다녔던 나를 옥죄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마음 때문이었는지, 주말에는 놀고싶은 욕구가 더 차올랐고 친구들과 미친 듯이 약속을 잡으며 유흥을 즐겼지만, 아주 야속하게도 이제 나의 체력은 20대 초반이 아니었기에 내가 마주하는 것은 다음날의 죽을 듯한 피곤함과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는 일요일이 전부였다. 피하기 위한 것만으로는 되는 것은 없었고 그것이 답이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근면해지지도 않았고 노력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번아웃, 그래 새로운 시작이 있었음에도 나는 제법 지쳐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VQOazBqfEU

지친 하루 - 곽진언 & 김필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은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어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 


 그래서 내게 후회하냐고 물었던 친구가 있다. 그리고 퇴사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 뜨끔했고, 나의 진정한 마음을 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선택에는 후회는 없다. 


 그리고 새로운 이직에서 나는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었다.


'척하지 않는 것.'


 새로운 회사의 업무 방식에서 '~한 척'은 나의 가장 안좋은 태도로 지적을 수차례 받았다.  면피를 위해 대충 얼버무리려고 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는, 사실 대부분의 한국 직장인들이 가진 그 태도에 대해서 내 상사는 꼭 이야기하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지금 모르잖아요. 왜 아는 척해요?"


 경력직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거 하나 모르느냐는 사람들의 핀잔이 겁이 났던 나머지 대충 아는 지식으로 포장하려 했던 못된 습관이 사라지기 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다.


"지금 안 괜찮잖아요. 괜찮은 척 하지 말고 이야기해요."


 그렇게 상대방과 반대되는 의견을 이야기하기까지 나는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한 척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어때요?"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괜찮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상사의 물음에 나의 심정을 올곧게 이야기하고 나의 걱정을 이야기하기 까지는 딱 세달이 걸렸다. 나의 이런 말에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의견을 상사는 내게 진솔하게 전달해 주었고, 나는 조금은 안도했다.







 그래, 이직하고서 3개월이 지난 지난 지금, 그리고 회사를 들어와서 쉰 적 없이 4년을 꽉 채운 요즘,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많이 지쳤다. 너무 열심히 달려온 탓에 생각보다 몸도 마음도 상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내게는 갑자기 나를 위해 퇴사했습니다와 같은 글을 올릴 용기도, 여유도 사실은 없다. 


"돈 많은 백수로 살고 싶어."


 누구나 꿈꾸는 그것.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성과를 맛볼 순 없다.


 사실 성장기는 한참이나 지났기에 지금의 아픔을 성장통이라고 포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대책 없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기에 그냥 열심히 달려온 나를 조금은 지쳤다고 나라도 위로하고 그 다음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책임을 온전히 수행할 뿐이다.


 그래도 제법 많이 올라왔다. 산 정상은 아직 멀리 있지만, 올라온 길을 쳐다보니 그래도 제법 멀리왔다.


 등산도, 운동도 힘들어 쉬어갈 때가 있으니 지금이 그런 달이기를, 오늘이 그런 날이기를 받아들일 것이다. 아마 곧 괜찮아질 것이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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