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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Dec 01. 2021

돌아 돌아와도 좋은 30대

ep.82 볼빨간사춘기-나의 사춘기에게

나는 요즘 가끔 꿈을 꾼다.


정말 잠잘 때 꾸는 꿈. 이것이 뭐가 문제인고 하니 나는 원체 타고난 잠순이인지라 언제 어디서든 포근한 침구만 있다면 꿈도 안 꾸고 숙면하는 체질이었다는 사실이다. 머리만 대면 시끄러운 주변과는 상관없이 푹 자는 게 가능한 내가 종종 꿈을 꾼다는 건 하여튼 평소와 다른 증상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 꿈들의 공통점이 있다는 거다. 바로 나의 20대의 어느 한순간들이라는 사실. 20대에 울고 웃었던 어느 한순간이 순간들이 잠깐씩 꿈에 나타난다. 마침 지난밤에는 스물셋의 어느 날 친구에게 마구 서러움을 토로하며 싸웠던 하루로 다녀왔다. 며칠 전에는 입사 면접을 보던 순간에 다녀오기도 하고 또 그 몇 주 전에는 오랜 친구들과 동네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스티커 사진 기계에서 한참을 웃으며 귀여운 문구를 썼다 지웠다 하던 시절을 만나고 왔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과 연말 감성 뿜뿜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꾸 이 꿈들을 곱씹어보게 된다.

"아 언제 또 한 살을 먹냐 우리가. 20대 너무 부러워. 돌아가고 싶어."

라는 말은 꼭 한 테이블에 한 번 이상 등장하기 때문에.


30대 초라는 나름의 위안(?)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30대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이 드는 기분이 별로이진 않다.(다른 이유로 무섭긴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기에 패스)


언제 우리가 30대가 되었는지, 20대의 싱그러움 그냥 발광하는 그 싱그러움을 잃어버렸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이 좋다. 지금이 좋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금세 라이어가 된다.


"거짓말 하지말라고오~~"


진짜 거짓말 아니라고요.

20대는 자체로 발광하는 싱그러움이 있는 나이다. 그래서 더 그 발광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순간의 아쉬움도 있고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예쁘고도 상큼한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좀 더 누려볼 걸 하는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이유는 그 당시에 순간순간 충실했던 때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침 며칠 전 꿈에 나왔던 입사 면접의 순간은 이렇다.


회사를 다니며 같은 계열의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경력을 공개하는 것보다 신입의 느낌을 주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들 해서, 재직 중인 것을 자기소개서에 숨기고 쓰라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스스로 용납이 안되었다.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직종의 일을 계속해봐야겠다는 이유도 그 당시의 회사를 다니며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이것을 덮으면 나를 부정하는 답만 줄줄이 이어질 것 같았다.


지원자들 중에는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역시나 면접에서는 늘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떨어졌다. 나와 같은 조건에서 경력을 쓰지 않고 붙었다는 다른 이들의 소식이 들려와 괜한 일을 한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나 세 번째에도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해서는 진솔한 답을 할 수 없었고 또 떨어졌다. (물론 떨어짐의 이유는 이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네 번째에 합격했다. 이 모든 일들을 다 지나서 현재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 있어서 오히려 지금이 훨씬 낫다고 할 만큼 아주 괜찮은 지금이다.


이 순간들을 며칠 전 꿈속에서 다시 한번 살고 오며 알았다. 아쉬움도 남고 후회도 남는 20대이지만, 내가 지금의 30대를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다행히),

웬만한 건 다~ 돌아 돌아서 온 것 같은데 돌아오면서도 지켰던 무언가가 있어서. 그래서 결국은 이뤄낸 지금이 있어서.



https://youtu.be/m43bXhP5qKY


이번주 수요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곡은 볼빨간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 라는 곡입니다. 멍 때릴 때 듣기 좋은 곡이라 언젠가는 이 노래를 마무리에 넣고 싶었는데, 오늘이 날인 것 같아서요. 모두들 올 한 해 고생 많으셨어요. 따뜻한 12월을 만나시기를.

첨부는 비긴어게인ver. 로 했습니다. 마지막 짝짝짝 박수소리까지 공유하고 싶어서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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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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