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Nov 03. 2021

아버지, 찬찬히 보니 많이 늙으셨어요

ep80. 싸이 - 아버지


퇴근해서 소파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아버지를 보는데, 많이 빠진 머리와 주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것 같으면서도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하다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 말로는 못할 이야기를 기록으로는 남겨둬야겠다는 생각. 이 글은 항상 내 곁에 우뚝 서 계실 것 같은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다.




아버지는 9남매 중 막내로,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고 한 달이 안 돼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아버지 이름 앞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끊으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망연도가 표기돼 있지 않았다) 당시엔 분유가 귀하고 없을 때라, 고모들이 아버지를 업고 젖동냥을 하며 아버지를 키우셨다.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며 이겨냈지만, 잘 드시지 못했으니,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셨다.

아버지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막내여서 꽤 오래 할아버지랑 같은 집에서 사셨는데, 그 뒤로는 완전히 혼자가 되셨다. 고모와 큰아버지들이 아버지를 거둬 같은 집에서 사셨지만, 집안 외 가족인 사람들은 마땅치 않게 생각해 어렵게 자라셨을 것이다.(아직도 술에 취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반복적으로 하신다)

전문직을 가져야겠단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해 임상병리사가 되셨고, 엄마를 만나 수원으로 올라오셨다. 지금 예순다섯의 나이에도 직업을 유지하고 계신다. 많이 번 적 없지만 네 가족 못 먹여 살린 적 없을 만큼 성실하셨고, 그만큼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시기도 했다. 아들 입장에선 한 편으론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매사 깔끔하고 생각이 많은 분이셨다. 어딜 여행 가기 전 사흘 전부터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고, 여행 가서도 계속 잃어버린 물건 없는지 계속 챙기는 타입. 아들 면접이라도 생기면 전날 모든 옷들을 깨끗하게 다려 옷걸이에 걸쳐두곤 했다. 옷은 항상 깨끗하게, 먹을 땐 소리 내지 말고, 짝다리 짚지 말고, 어디서든 적을 만들지 말라고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반복해 말씀하셨다.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만큼은 되지 말라고 말하셨다.


유년시절의 두 아들은 강하게 키우셨다. 축구를 가르쳐주면서 공을 뺏기면 끝까지 따라가서 다시 뺏어오게 하셨고, 공부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회초리를 드셨다. 학창 시절엔 중고 교과서를 사 와서 본인이 먼저 공부한 다음 아들에게 과외를 시켜주시곤 했다. 딱 대학에 가기 전까지 엄한 아버지셨다. 그 결과, 두 아들은 나쁘지 않은 성적과 부끄럽지 않은 축구 실력 등을 갖고 세상에 나가게 됐다.


그렇게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엄마의 유방암 판정 이후 완벽히 달라졌다. 엄마의 모든 말을 들어주고, 모든 집안일을 전담하셨다.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고 매주 두 분이서 등산, 헬스장을 다니며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완치 후에도 엄마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면 한달음에 약과 죽을 사 오시곤 한다. 경상도 남자의 향이 많이 빠졌다고나 할까. 정말 완벽하게 달라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갖고 있는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앞서 말했듯 술에 취하시면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하신다. 항상 같은 패턴과 문장이지만 아버지는 참 많이 그리우신 것 같다. 가끔은 꿈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며, 이야길 하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빛이 나고 계셨다. 미래보단 과거에 살고 계시는 사람. 한 편으로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게 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들인 내가 30년 동안 바라본 아버지의 특징은 이러하다. 더 많은 아버지만의 습관, 표정, 생각이 있겠지만 막상 떠올리려 보니 안 떠오르네. 너무 가까이 있고,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관계. 그 관계를 더 잊기 전에 글로나마 남겨보고 싶어 이렇게 적어냈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할 때면 항상 싸이의 아버지라는 곡이 떠오른다. 그냥 이 곡 말고는 다른 노래는 떠오르질 않는다.


https://youtu.be/ig8AaFSzzGI

위에서 짓눌러도 티 낼 수도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무것도 모른 체 내 품에서 뒹굴 거라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일 때는 두 부모님도 없이 세상과 맞서 이겨내고 계셨고, 본인 결혼식의 부모님 자리엔 큰아버지와 고모가 앉아계셨을 것이다. 나로선 상상도 하지 못할 일. 그런 풍파들이 아버지를 강하게 키워냈던 걸까.  아직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번도  적이 없다.

나도 짱구 나잇대일 땐 아버지 무등을 많이 얻어탔겠지.

여전히 오늘도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아들을 깨우고 출근시킨 뒤, 아들 방을 청소하고 출근하신다. 월요일에는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러 나가시고 호우 예보에 온 가족 우산을 챙기고, 현관문에는 외출 전 챙겨야 할 소지품들을 메모해서 붙여두셨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아빠 역할은 인생에서 처음일 텐데, 그 누구보다 잘 해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데, 참 잘 해내시고 계셨다. 지나 보니 더 느껴진다.


너무 익숙해 일상으로 녹아든 아버지의 행동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많은 자식들은 부모님의 이런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항상 그 자리에 계실 거라는 막연한 생각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런 날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예순다섯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오신 날보다 길지 않으실 나이. 같이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말을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 시간일지 모르는데 참 행동하기가 어렵다. 언젠가 나도 아빠가 될 텐데, 그럼 지금 아버지 모습처럼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반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


내일은  생일인데, 가족 회식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봐야겠다.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구독과 공감, 댓글은 더 좋은 매거진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매주 수요일 '수플레'를 기다려주세요!


(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