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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Oct 13. 2021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ep. 79 D-hack, Pateko - OHAYO MY NIGHT

https://youtu.be/KCpWMEsiN3Q



얼마 , 퇴근길 버스에서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이 우연히  귀에  노래를 흘려보냈다. 심플한 기타 멜로디와 흥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인트로. 화면을 보니 가수도 제목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무심코 따라간 인트로 뒤로 들리는, 약간의 반항기가 담긴 목소리의 첫마디가 심장을 쓸쓸하게 때렸다.

'자기야,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언뜻 보면 평범한 질문이고 제안이고 부탁이다. 사랑이라는 어떠한 행위, 그것을 나라는 사람에게 해주면 안 되겠냐는 제안. 하지만 이 문장은 좀 낯설다. 그리고 애잔하고 슬프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꺼내본 기억이 있었던가?


'나랑 밥 먹어주면 안 돼?'

'나와 데이트해주면 안 될까?'

이런 제안은 사실 흔하다. 썸의 단계에서 꽤 과감한 스타일이라면 쿨하게 던져볼 법한 말이기도 하다. 물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꺼낸 제안일 수도 있겠다. 설령 그 제안에 'NO'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조금 좌절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자 꺼낸 말이다. 그 대답에 따라 설레는 첫 데이트를 하거나, 아니면 조금 시무룩하더라도 이 관계를 이어갈 다른 방법을 찾을 테니까.


'나를 사랑해줘'

이런 요구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연인 사이에서 한껏 애교를 부리거나 혹은 서운함에 칭얼거리면서 할 수도 있는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이야 물론 다를 수 있지만 화자가 당장 듣고자 하는 대답은 오로지 하나다. 그래, 당연히 널 사랑하지. 사랑해줄게.

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대답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기야,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이 질문은 좀 다르다. 과연 그는 상대방의 대답을 기대하고 이 질문을 꺼낸 걸까. 밥을 먹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양을 느낄 수도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에게 달라고 말하면서. 그 대답은 'YES'일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를 사랑해주면 안 될까? 그리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주면 안 될까? 그리고 부탁한다. 그러면 안될까?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슬프고 조금은 비참하다. 심지어 한 때 '자기'라고 불렀던, 곧 손을 놓아버릴 것 같은 연인에게 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이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에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슬픈 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야,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말처럼 쉽지 않을 건 알지만

세게 날 안아주면 안 될까

오늘따라 세상이 무섭단 말야


내가 너를 사랑해도

네가 날 안 사랑해도

우린 나름대로 행복할 거야


내 방 천장에 그려 본,

내 우주에게 물어본

말은 나를 사랑하면 안 될까?




스물일곱이었던 A와 스물둘의 나 사이에는 아무리 애써도 치워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두툼한 수건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카웃된 회사에 적응하며 진짜 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A와, 내가 발을 딛는 곳마다 재밌는 일이 가득하던 이 삶이 내 이십 대 모습의 전부일 거라고 어렴풋이 믿었던 나.

그는 내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고 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겨우 대학교 때까지 내가 경험한 것들에 기반한 딱 그 정도였다. 서로가 놓여있는 그 시기에서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또 애써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그와 그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A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느낄 수도 있었다. 바쁘던 시기에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함께 고민해주고, 내가 느끼는 서운함을 이해해주려고 노력도 했다. 바쁘고 피곤해서 너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너는 내 말투에 서운함을 느끼더라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고 있다고. 변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참 대책 없이 많이 울었다. 그의 사소한 말투의 변화, 연락의 빈도, 피곤함이 느껴지는 표정조차도 이 관계가 끝나는 신호일까 봐 무서워서. 괜히 서운하다고 칭얼거리는 어린 여자 친구로 끝나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 참다가 펑 터져버려 가시 돋친 말을 내뱉고는 그런 내가 미워서 못나서 또 울었다.


결국 A와 나는 잠시 서로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시간의 끝이 관계의 끝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작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일주일 후 받은 전화에서 그는 지친 듯이 말했다.


- 그래, 이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미안해. 이제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사랑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건 줄 알았는데. 이 관계는 의지로 이어지는 거였구나.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도 의지가 필요한 거였구나. 그렇게 피하고 싶던 그 순간을 맞닥뜨린 순간 다른 말보다 무심코 튀어나온 질문은 하나였다.


- 혹시, 나 사랑하긴 했어?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그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슬프게 대답했다.


-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그날 밤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학교 앞 공원에 앉아 엉엉 울었다. 대책 없이 참 많이도 울었던 그 여러 날 중 아마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학생, 왜 그렇게 우냐며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그리고 불과 몇 주 후, 나는 첫 인턴에 합격했다. 첫 출근날부터 주말까지 야근을 했고 눈코 뜰 새 없던 일주일이 지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문득 벌써 A와 헤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것과, 그 사이 슬프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는 걸 떠올렸다.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일을 시작했더라면,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네가 나에게 지치지 않고, 나를 조금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몇 년 뒤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서로를 깊게 알아가고 함께 웃고 행복해하고 그러다 몸이 멀어지고 점점 통화 끝에 한숨이 잦아질 무렵, A와의 마지막처럼 나는 그에게 전화로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그에게 이번엔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


- 미안해.

- 왜 미안하다고 하는데, 미안하면 안 헤어지면 되잖아.

- ...이제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A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더 이상 의지가 없다. 그 말을 지금 내가 똑같이 하고 있구나. 그때의 A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때 마치 누군가의 짜여진 장난처럼 B가 슬프게 물었다.


- 날 사랑하기는 했어?

익숙한 그 질문에, 대답은 애꿎게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마치 녹음된 테이프처럼 그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쓸쓸한 나의 대답에 머릿속 A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는 화를 냈다. 그리고 울었다. 그리고 그는 슬프게 물었다.

- 그냥 헤어지지만 않으면 안 될까?

  그냥 나만 널 좋아하면서 좀 더 만나면 안 될까?


그 질문에 그가 나에게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던, 설령 물었다고 해도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질문이었으니까. 내 손을 애써 놓으려는 연인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내가 비참해지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꺼내보는 그 질문. 이미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슬픈 확신을 하면서도.


자기야, 날 사랑해주면 안 될까?






https://www.youtube.com/watch?v=KCpWMEsiN3Q


요즘 푹 꽂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가 된 D-hack과 Pateko의 <OHAYO MY NIGHT>. 알고 보니 얼마 전 틱톡에서 이슈가 되어 음원차트에서 소위 '떡상'을 하고 있던 노래더라고요.

이 노래를 들으며 이 뮤지션은 아마 내 또래의 남자일 것 같다,라고 생각했었는데 프로필을 찾아보니 저와 딱 1살 차이가 나는 걸 보고 신기해하기도 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 같은 이 가사와 덤덤하지만 쓸쓸히 내뱉는 목소리에서, 어렴풋이 이 정도의 시간을 거쳐 연애를 해왔을 법한 한 남자가 떠올랐거든요.


유튜브 댓글을 찾아보면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가사를 공감 가도록 잘 쓴 것도 있지만 이 뮤지션이 읊는 가사가 귀에 정말 잘 들어오거든요.

언젠가 한 번쯤 누군가에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물어보았을, 혹은 차마 묻지는 못했어도 너무 묻고 싶었을 그 질문.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의 가사에 그토록 공감하는 것을 보면 모두들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을 그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이 노래를 들으며 떠올릴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이야기도 살짝 궁금해지네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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