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HFG-Rundgang Offenbach
지난번에 했던 전시 기록.
10월 말 학교에서 전시를 했다. 할까 말까 하다가 요새 너무 그림을 안 그려서 일종의 죄책감과 창피함에 전시를 하겠다고 했다. 최근 1-2년 동안 웬만한 건 디지털로 전환해서 작업을 해왔고 그림보다는 현재의 삶 유지에 중심을 두어 본업과 조금(많이) 멀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서둘러 그림을 그렸다.
두세 시간 남짓 집중하여 완성했다. 현재 작업실이 없기 때문에 거실에 비닐을 깔아 두고 그림을 그렸다.
집안이 순식간에 어지러워졌지만 묘한 안식을 느꼈다. 살아내야 하는 삶이 아니라면 걱정 없이 그림만 그리는 삶은 행복할 것 같다 생각을 하다가도 그렇다면 어딘가에 틀여 박혀 두더지가 되어있겠지. 이런저런 우스운 생각들을 했다.
나는 올해 여름에 처음으로 우리 집에 들인 식물, 행운목을 그렸다.
사실 나에게는 물체의 대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출발점, 모티브만 될 뿐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던,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솟아나고 그려내고 어떤 색을 쓸지 무슨 방향으로 뻗어나가는지 찰나의 순간에서 그때 그때만의 선택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아무런 갈등과 왜곡 없이 캔버스 위에서 긴 호흡을 마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애착이 없는 대상을 그려내진 않을 테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모든 생의 시간들이 압축적으로 보여진다. 탄생하고 자라고 솟아나고 다시 시들고 일련의 과정을 위에서 조망하고 있는 듯하다.
내 시야에서 보이는 작은 세상에서 우리네의 삼라만상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세상 위에서 또 다른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무튼 그림 하나를 오랜만에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았을 무렵 (전시 일주일 전) 각각 하나의 방, 전시 공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년 기존 원래 전시를 하던 공간이 아니라 학교 본관은 물론 예전에 경찰청으로 쓰인 건물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랴 부랴 그림을 더 그리고 예전의 그림들도 가져갔다. 전시 안 하려다가 결국 전시 오픈 전날까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
빨간색을 메인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데 아주 강렬하게 生했으면 바람에 빨간색 계열을 사용해 그렸다.
여기는 벽이 따로 남길래 예전에 그렸던 거리 연작 시리즈를 걸었었다.
전시 전, 집 거실 바닥은 온통 그림과 물감으로 가득했다. (사진은 마감제를 발라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갑작스러운 전시에 정신없었지만
그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