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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Jul 27. 2020

요상한여름

회상의 어느 하루

2020년 7월 27일 서울     


2년 전 한국에 왔을 때 그 해의 여름은 너무 더워 힘들었는데 이번의 여름은 놀랄만치 서늘하다. 오늘도 비가 올 듯 말 듯하다 조금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점심에 운동을 마치고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은 이번 봄의 하루를 생각나게 했다. 그날은 오늘 날씨와 달리 화창했고 눈이 부셨다. 이따금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라이딩을 하면서 오늘처럼 또 다른 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날에 썼던 메모가 불현듯 기억났다. 집에 도착해 기록을 뒤적이다 찾았다.     


2020. 4. 25          

오랜만에 라이딩.

어제저녁부터 생각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꼭 자전거를 타러 가야지,

한강에 도착해서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봐야지 하고.     


혼자 자전거를 타는 것. 참 오랜만이었다.

독일 가기 전에는 혼자 종종 한강까지 달렸는데, 애니라고 이름을 붙여준 핑크색 귀여운 자전거와.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나의 애니는 녹이 많이 슬었고 서울에는 따릉이가 생겼다.     


 (지금은 다시 돌아갔지만) 최근 한국에 놀러 온 a와 세네 번 자전거를 탔었다.

우리는 정말 많이 싸우는 사이인데, 웃기게도 함께 있으면 참 편안하다.     

"a야. 나도 타본 적은 없는데 한국에 따릉이라는 게 생겼대. 어디서든지 자전거를 빌릴 수 있고 우리 동네 근처에서 35분 정도 달리면 한강도 볼 수 있어. 같이 타볼래?"라는 나의 말에 a는 아이처럼 설레했다. 5년째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같이 자전거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운동신경이 있는 a와는 달리 나는 참 미숙하다. 자전거는 무조건 자전거 도로에서 타야 하고(안전제일) 심한 오르막길은 힘들어서, 내리막길은 무서워서 타지 못한다. 

 자전거를 처음으로 같이 탄 날, a는 천천히 템포를 맞춰주고 기다려주었다. 두 번째 탈 때는 나름 타 봤다고 내가 탈 따릉이를 꺼내어 주고 손잡이를 알콜세정제로 소독해주었다. 언제 한 번은 반납 시간이 다다랐을 때 반납소가 제법 멀리 있었고 심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지나쳐 가야 했다. 그날 싸워서 서로 감정이 상해 있었음에도 a는 자기 먼저 빠르게 달려 자신의 자전거를 반납하고 내게 뛰어와 내 자전거를 타고 60도의 경사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슝슝 지나 빠르게 제 시간 안에 반납하고 내게 다시 돌아왔다. 따뜻함과 안정감이 묘하게 섞여 몽글한 감정이 올라왔다.     


 a는 다시 독일로 다시 돌아갔고 따뜻한 봄날은 이어졌다. 

종종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혼자 타야 한다는 게 조금 버겁게 느껴져 내내 미뤘다.     

혼자 자전거를 빌리고 혼자 한강으로 달리고 다시 돌아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 반납을 하러 가는 여정이 부담스러웠다. 옛날에는 혼자 참 잘 탔는데 뜬금없이 혼자라서 부담을 느끼는 건 a와 함께 탔을 때 느꼈던 안정감과 편함 때문이겠지.     

 

 오늘 아주 느린 아침을 보내고 마침내 집을 나섰다.

혼자 자전거를 빌리고 자전거 도로까지 터덜터덜 끌고는 느릿느릿하게 한강까지 달렸다. 

달리고 달리다가 언뜻 보이는 일렁이는 강가에 속도를 낮추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강이 바로 보이는 의자 앞에 앉았다. 

강물은 끊임없이 반짝인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면 내 마음의 뾰족한 모서리들이 깎여나가는 느낌이다.

흐르는 물 위에서 햇살이 부서지고 반짝이며 일렁이는 표면 위에서 生 할 때     

내 마음속 밑으로 꾹꾹 눌러놓았던 슬프고 아픈 마음은 소멸하고 사랑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것, 반짝이는 것만 남아 

일렁인다   


그날의 강가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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