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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Aug 28. 2020

2015년의 벽화

한국을 떠나며

오래된 단독주택.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의 평생을 살았다. 

어릴 적 사진 속의 집은 청년처럼 정정하고 힘 있는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되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지붕에 비가 때때로 새며 아래층 바닥에도 물이 고인다. 일부 나무 문은 삐걱이기도 잘 닫히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의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가족은 집을 고쳐야지 고쳐야지하면서 살다가 하나를 고치려고 하면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 까닭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살고 있다.


나에게는 애증의 공간, 집.

여기서 자랐고 중학교 때부터 내 방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려온 공간, 아빠와의 수많은 트러블과 싸움에 힘들어했고 결국 우울증으로 마음의 빛을 잃은 2-3년을 보낸 공간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떠날 채비를 준비하던 공간.


엄마는 아래층에서 아이들 논술지도를 했는데 아빠와의 잦은 트러블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래층에서 보냈다. 내 삶을 뒤흔들었던 힘든 시기가 지나고 마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넘긴 것처럼 모든 상황과 조건이 맞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독일에 가게 되었고, 가기 한 달 전 그동안의 그림을 모아 집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 때문에 유독 칙칙했던 가운데 방의 벽지를 떼고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하얀색 칠을 두어 번 하고 파란색을 덧발랐다. 나는 엄마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 위에 마음껏 스케치를 해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크레파스로 무작위의 선을 그리기도 낙서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가운데 방에 혼자 앉아 그려진 선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고래와 파도가 보였다. 그렇게 나는 바닷속을 그렸다.


2015년도의 벽화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과 벽화를 허물처럼 남겨두고 24살의 나는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29살의 나는 다시 여기에 와 있다. 마음이 많이 단단해져서 나는 다시 예전처럼 오래도록 힘들어하지 않을 거라 자부했는데 한국에 있는 시간이 오래 지나서인가, 다시 허덕이는 마음이 올라온다. 내가 처음 한국을 떠났을 때처럼 피폐해진 나를 다독여 다시 독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비가 많이 온 까닭에 이 방에만 바닥에 물이 찼다. 우리 가족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책장 등등 물건을 옮기고 장판을 다 걷었는데 그냥 콘크리트 위에 페인트를 바르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머리속에 작업할 수 있는 작업실이 내내 맴돌았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코로나로 뭘 하기에 마땅치 않아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돌아가기까지 한 달 남짓 남았지만 내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저께 시켰던 캔버스와 물감은 오늘 다 도착했다. 많은 시간의 생을 산 건 아니지만 유독 삶이 끝자락까지 몰린 순간들이 더러 있었더란다. 희한하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 같을 때 앞으로 나아가기도 버거울 때 절망의 시간에서 틈 사이의 작은 빛은 반짝였다. 맨 처음 마법처럼 모든 상황이 만들어져 독일을 가게 됐을 때였고, 너무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당일날 받은 미대 합격 편지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그림이 간절한 내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그렇다.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내 삶의 방향은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게 향한다. 남들처럼 그냥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으면 하는 상황이 전혀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이 작은 빛을 믿고 어둠 속을 걸어 문을 찾아야지. 

그 문을 열면 내가 바란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상이 있기를 바라며. 결국 내딛었던 모든 순간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언젠가는 말하겠지만 

페인트칠한 방바닥


내일 나는 그림을 종일 그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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