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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Oct 14. 2020

다시 독일로

어떤 삶의 형식

한국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독일로.


못 끝낸 작업을 뒤늦게 하다가 밤을 새버리고는 헤롱헤롱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동생이 차를 빌려 인천공항에 데려다줬다. 눈이 감기는데도 차 안에서 본 아침 하늘은 참 맑고 청량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온라인 체크인은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공항에 사람은 얼마 없으나 약간의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짐을 부치고 표를 받으니 시간이 빠듯했다. 탑승객이 적어 그런지 보딩시간도 앞당겨졌기 때문에 지체 없이 짐 검사를 하러 들어가야 했다. 엄마와 동생의 글썽이는 모습을 뒤로한 채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저릿한 마음을 안고 들어갔다. 


 

 늘 북적였던 비행기 안은 텅텅 비고 한산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윽고 기내 안이 깜깜해졌다. 눈을 감았다. 

코로나로 루프트한자의 직항노선이 없어져 인천에서 뮌헨 11시간, 4시간 경유 시간 뒤에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 1시간을 더 가야 했다. 피곤한 몸을 뉘이고 잠에 청했다.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고를 몇 차례 반복했다. 자다가 기내식을 놓쳤다. 두 번째 기내식이 나올 때는 깨어있었는데 코로나도 그렇고 그냥 먹지 않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데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었다. 한국과 독일의 거리가 정말 멀긴 멀구나. 내가 어쩌다가 이 먼 땅에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온 거지. 2014년이었던가 2015년이었던가 내가 처음 독일로 온 게. 그때는 장거리 비행이 처음이라 마냥 신나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었는데. 이제는 한국과 독일 반복되는 비행 속에 어떤 형식의 삶인지 돌아보게 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도는 동안 이제 곧 착륙을 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날씨가 좋을 거란 기장의 말이 무색하게 막상 도착해보니 빗줄기가 하나둘씩 투둑 떨어진다.

이 우중충한 날씨를 보니 아 정말 독일에 도착했구나 싶었다.

 

 뮌헨에 도착해 무지 무거운 빨간 베낭과 꽉꽉 찬 기내용 캐리어를 낑낑 들고 내렸다. 아 직항이었다면 지금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텐데 경유시간이 무려 4시간이었다. 어디에 앉아있을까 돌아다니다 무거운 어깨에 대충 근방의 의자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기내용 캐리어에 발을 올려두고는 베낭을 뒤적거렸다. 이때 읽으려고 책을 한 권 빼 왔었는데 읽는 둥 마는 둥 피곤에 눌려 눈을 깜박이는 것도 버겁다. 책을 읽다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가 몇 글자 보다가 핸드폰을 본다. 다들 잘가라는 안부 메세지. 밀린 메세지에 답장을 할까 하다가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기도, 너무 피곤하기도 해 도로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가지 않을 것 같던 지루하고 피곤했던 4시간을 보내고 독일 국내선에 올랐다. 여기는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시끄러운 사람 목소리들로 귀가 따가워진다. 


그렇게 다시 이륙을 한다.

하염없이 창만 바라보다 도착을 했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프랑크푸르트의 저녁의 하늘은 맑았다. 그 날의 따뜻했던 햇빛을 사라지기 전에 무참히 뱉어 놓은 듯 색을 잃어가는 하늘에 얼룩덜룩한 빨간 노을만이 자리했다. 나는 다시 무거운 빨간 베낭을 배고 기내용 캐리어를 끌며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짐을 찾고 나가니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여 약간의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너무나 익숙한 지하철과 집으로 가는 거리였는데 제일 낯선 건 나의 모습이었다. 집에 도착해 캐리어 두 개와 베낭을 털썩 두고 힘없이 기대앉았다. 온몸을 누르는 피곤과 뻥 뚫린 공허의 바람이 내 마음에 넘나들었다. 집에 들어오니 엄마와 동생, 사랑하는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저 고요함만이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 소리만 들렸다. 조금 더 나은 먹고살 곳을 찾아 여기로 왔다. 여기서라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더 인정을 받으며 경제적인 조건도 갖추어질 거라고 믿어 이 먼 땅으로 왔다. 내가 하는 것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라 생각해 온 건데 오늘따라 그냥 '먼 땅'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어떤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걸까. 


 나는 다시 독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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