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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Nov 02. 2020

아주 바쁜 3개월을 보내게 되겠지.

개강과 새로운 일자리 그리고 이사.

11월이 시작됐다.

여기는 날씨가 하루는 반짝 좋았다 며칠은 우중충하기를 반복하지만 이제 곧 깜깜한 겨울이 올 것임을 안다. 독일 특유의 낮고 바닥 밑까지 차분해지는 바이브는 사람을 느릿느릿하게 만든다. 하지만 빛이 금방 저무는 탓에 하루는 순식간에 날아간다. 아침 8시, 9시 즈음 해가 떠 늦은 아침이 시작되고 오후 4시 이후로는 그 빛이 빠르게 소멸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둠을 머금은 하루 속을 살아간다.


 코로나로 인해 10월 중순 즈음에 시작하는 겨울학기는 11월 2일로 미뤄졌다. 이번 학기에는 늘 듣던 회화 수업은 듣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끝내야 할 이론 수업을 두 개 듣고 비디오 수업과 그래픽을 들어보기로 했다. 평생 친해지지 않을 것 같던 미디어와 조금씩 알아가 보려고 한다. 나는 하나가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것만을 바라보느라 주변의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내 안에 담아내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니까 그림만 생각했었고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하는 것이 뚝심이 아닌 아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것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비디오와 일러스트레이션.


 개강과 동시에 일을 시작한다. 주 3일 6시간 사무보조일을 하기로 했다. 독일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해 알바는 해야 했지만 예전 같았으면 사무보조일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근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업무 이해도도 떨어질 테고 마음도 그냥 단순 알바처럼 느슨하게 할 수 없어 겁이 났을 테니. 그런데 한국에 오래 있게 되면서 깨달았다. 내가 삶의 현실성이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을. 독일에 5년 정도 있으며 독일어를 배우고 학교를 준비하고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하는 동안 나의 현실의 나이를 잊고 살았다. 내가 나를 조절하고 대하는 방법은 나름 능숙해져 있을지 몰라도 내가 삶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대처하는 방식은 아직 독일로 떠났던 24살에 머물러 있었다. 현실세계와 나를 잇기 위해 주 3일 아침 7시 30분에 나서 오후 5시 30분에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은 내일 시작한다.


 개강과 새로운 일과 동시에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독일에서 이사를 한다는 건 정말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12월까지 살기로 했다. 이사 갈 집은 이미 11월부터 이사 들어가기로 한 상태이다. 새로운 집엔 전등도 없고 부엌도 없고 아무 가구도 없는 텅텅 빈 집이다. 가구를 들이는 것도 기본 2-3주가 걸리고 부엌 설치도 한 달이 걸리는 일이다. 일이 되어있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 조바심을 잘 내는 내가 무엇인지 몰라도 마음은 평온하고 차분하다. 목표는 11월 말까지 대략적인 건 구비를 하고 크리스마스를 새 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깜깜한 겨울 속에서 분주히 아주 바쁜 3개월을 보내고 나면 조금씩 길어진 빛의 날들을 만나게 되겠지. 

그럼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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