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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Aug 02. 2020

일요일의 루틴

회색 여름의 나날들 그리고 8월의 시작.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내내 어둑어둑한 하늘과 꿉꿉한 날씨에 피곤은 겹겹이 쌓여간다.

매일매일 비가 오는 사이에 8월이 왔다. 2월에 한국에 와서 4월에 돌아가는 일정이었지만 코로나로 비행기가 연달아 취소되고 독일에서도 입국을 한 동안 막아 돌아가지 못했다. 여름학기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듣는 듯 마는 듯한 학기를 보내고 종강되었다. 독일 유학생 커뮤니티를 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자를 소지한 자는 6개월 이상 타국에 체류할 경우 비자가 소멸된다는 것이었다. 학생비자를 가진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고 방학 때나 한국에 잠깐 있다 돌아가니 그 사실을 몰랐다가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2월 중순에 왔으니까 나는 8월 17일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내가 사는 지역 관할 외국인청에 부랴부랴 메일을 넣었다. 이래저래 해서 아직 한국인데 10월에 돌아가도 괜찮겠냐고. 독일답지 않게 하루 만에 답장이 왔다. 유효기간 6개월 이내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유가 무엇이냐고, 혹시 비행기가 없다면 관련 증명서류를 보내 달라고. 돌아오지 못하는 사유는 제가 아직 가고 싶지 않아서인데요.....하하. 10월 중순에 시작하는 학기도 코로나로 11월 2일로 미뤄졌다. 우선 지금 독일로 돌아가서 할 것도 없고 여기서 이것저것 일을 벌려 놓은 게 많은데 이제 돌아간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남자친구한테 나 대신 메일을 '설득력 있게' 잘 좀 써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그렇게 6일이 지났고 나는 불안함에 몸부림쳤다. 지난주 금요일 가까스로 연락이 되었고 운이 좋게 5개월 체류 연장 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10월 초에 돌아갈 생각이다. 


  독일에서의 일요일 루틴은 알바를 마치고 퉁퉁 부은 다리로 돌아와 지친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월요일은 늘 공강으로 비워두고 느지막하게 9시 즈음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작업을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일요일은 알람 없이 자고 싶을 만큼 자고 일어난다. 7월부터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로 다짐했기에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도 몇 시간을 자도 6-8시에는 일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대체 평균적으로 6시 30~7시에는 일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일요일 하루쯤은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알람 없이 푹 잔다. 푹 자고 일어나서 우리 야옹이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 앉는다. 저번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찬찬히 돌아본다. 늘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도 아쉬움이 있다. 아쉬움은 뒤로 한 채 다음 주 플랜을 짠다. 이것저것 알아볼 정보들을 검색을 하고 기록을 한다. 밀린 책을 읽고 잡지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지난 한 주를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해 일요일은 평온하고 잔잔하게 하루를 보낸다. 7월이 지났다. 7월의 나날들은 약간 더디게 느껴졌다. 매 달마다 새로운 달을 맞이할 때 느껴지는 기분들이 있다. 8월은 뭐랄까, 타로카드로 치자면 메이저 카드에 첫 번째 장 Fool, 바보 카드의 느낌이다. 아무 준비나 계획은 없지만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는 상태. 지금까지의 마음의 짐과 부담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든다. 8월은 보다 잘 흘러갈 수 있는 내가 되기를. 7월에는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가 쌓여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일을 하면서도 생각했던 결과가 눈에 빨리 보이지 않자 중간중간에 욕심과 불안함이 올라왔다. 허공에 삽질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7월이 더디게 느껴졌나 보다. 

 

 8월을 시작하며 다이어리 다음 장을 넘기고 새로운 월간의 수많은 빈칸들을 본다.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의 여름, 8월의 빈 칸들은 어떻게 채워질지 궁금하다. 지난날의 조급했던 마음은 내려두고 그저 끊임없이 주어진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잘 살아가기를, 비록 회색빛 가득한 여름이지만 내 마음엔 환한 햇살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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