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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Jan 20. 2021

카메라가 생겼다.

크리스마스 선물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남자친구와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처음으로 왜인지 모르게 서로 비싼 전자기기 선물을 주고 받았다. 마치 서로 짠 것 마냥.  다름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조금 다른 매체를 다루고 싶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원한 건 아니었다. 그냥 최신 핸드폰을 사서 간간히 비디오를 찍고 편집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만 있었을 뿐. 

그래서 평생 갤럭시 유저였던 내가, 아이패드도 있고 작업할 때 편할 것 같아 출시하자마자 이번에 나온 아이폰을 구매했었는데... 받은 새 핸드폰이 불량이라 반품 요청하고 그 뒤에 다시 받기도 전에 배송이 도난당하고 다시 재신청한 배송이 누락되어 내내 고객센터에 몇 십번씩 통화를 해야 했던 이런 만만치 않은 두 달을 보내고 지치고 화나서 결국 환불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디오를 찍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 저 멀리 휙 날아가던 참에!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나는 틈틈이 쉴 때마다 밖에 나가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별 것 아닌 비디오들이지만 영상을 찍는 것과 편집하는 것을 손에 익히기 위해 영상을 찍고 모아 편집을 한다. 소소한 일상 영상들은 틈틈이 (종종) 유튜브에도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비디오를 찍는 것 자체도 어색하다. 하나의 편집을 마치고 다른 영상을 만들 때는 이전의 어설픔들이 보인다. 계속해서 각기 다른 어설픔들이 튀어나온다. 이런 미숙함이 난무하는 고작 10분에서 15분짜리의 비디오를 만드는 데에는 종일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재미있다. 낱개의 짧은 비디오를 어떤 식으로 연결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편집해 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음악을 넣거나 효과들을 넣어 내가 느꼈던, 의도했던 감정들을 얹을 수도 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기술이 점점 더 손에 익어 하고 싶었던 방향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치가 생긴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에 가입해두었던 별자리 사이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주의 흐름이 담긴 짧은 텍스트가 메일로 온다. 나는 오거나 말거나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영어라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관심도 떨어져서 메일이 오면 그냥 바로 삭제를 하곤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2주 전부터 클릭을 한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눌렀다. 멍 때리다 읽어보니 묘하게 상황이나 내가 지금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얼추 맞았다. 이번 주에도 메일함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에게 친숙한 것과 아는 것을 확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이나 당신 내면세계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성장을 위한 필요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소통해왔던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세요. 더 대담해지고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것을 취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세요. 이 갈등은 당신의 생활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 말은 모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 삶에서 사람들을 들이세요. 모든 것에 yes 하세요. 당신은 결정해야 합니다. (번역 매끄럽지 않음 주의 )


뭔가 요즘의 내 생각을 관통하고 있는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아는 것을 확장시키고 싶은 욕망과 나의 내면세계 내의 갈등.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소통해왔던 방법. 


 나는 나의 그림으로서 작업으로서 기꺼이 내어지고 싶지만 나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작업이 매체로서 보여지는 것일 뿐 나 자체가 매체가 되어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요즘 너무 애정하는 '싱어게인'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분들의 노래와 새로운 목소리를 듣게 되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무명 가수분들이 저 무대에 직접 서지 않았다면 나는 저 깊고 다양한 세계를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 길이 없었을 테니까. 예술가로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일까? 

별자리 메일의 모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있는 나와 앵글 안의 내가 맞물리며 빙글빙글 돈다. 




 나는 카메라를 선물 받은 지 거의 두 달이 되었음에도 카메라 속에 내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습을 잘 찍지 않지만 오늘 회사에서 별자리 이메일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괜히 카메라를 켜고 나를 찍어본다. 

2021-01-19 나의 카메라와


카메라가 생기고 생각의 방향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 

카메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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