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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Jan 27. 2021

인생의 권태

여느덧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눈을 뜨고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여태와 다른 바다 깊은 속 깜깜하고 어두운 그 무엇인가가 나를 잡아 내린다. 아- 오늘도 일을 가야하는구나. 지겹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나갈 준비를 서두른다. 아침 7시50분에 집에서 출발해 대략 4분 정도 지하철을 기다린다. 짧은 기다림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듯 하다. 여섯 정거장을 가고 중간에 내려 3분 정도 기다려 환승한다. 수 많은 정거장을 지나친다. 역에서 내린 나는 길게 길게 걷는다. 내딛는 발걸음 걸음마다 권태가 묻어있다.

 자리에 도착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쓴다. 컴퓨터가 켜지면 출근 스탬프를 찍고 포탈에 접속해 쌓인 메일을 확인한다. 해야할 일이 차곡 차곡 겹쳐있다. 나는 종일 복사기 기계와 내 자리를 오간다. 커피를 한 두잔을 내리 마신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또 마신다.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 할 준비를 한다. 안경을 넣고 짐을 챙겨 건물 밖으로 나온다. 


 환승해야하는 역에서 내리지 않고 중앙역에서 내렸다. 나는 지친 마음을 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올라간다. 키오스크를 서성이다 마음을 먹고 작디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협소한 간이책상 위에는 다양한 로또들이 즐비해있다. 한 장의 로또를 집어 든다. 주머니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내어 숫자에 엑스표를 친다. 계산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내 차례가 되어 터벅 터벅 계산대로 향한다. 이것만 구매하시는거냐는 점원의 말에 옆에 긁는 복권을 가리키며 '이것도 두 장 주세요.'라고 말한다. 나는 다시 집의 방향으로 향한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 지하철을 기다린다. 고작 4분여 남짓인데 출근할 때 기다렸던 지하철과 같은 영원의 시간이다. 오늘따라 사람이 참 많다. 마스크를 쓰고 다들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지.

달리고 달려 집까지 한 정거장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가방 안에서 꼬깃 꼬깃 긁는 복권을 꺼낸다. 집에서까지 우울한 이 마음을 안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에. 슬픈 날엔, 당연히 으레 나오는 꽝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빠르게 손톱으로 긁어나간다. 두번째 장부터 긁는데 호랑이 밑에 4유로라고 적혀있었다. 호랑이 옆에는 원숭이 20유로가, 여러가지 동물 밑에는 금액이 있었다. 이게 뭐 어떻게 되는거지 어리둥절하던 찰나 맨 아래 짧은 설명을 보았다. 여기서 호랑이를 찾으면 호랑이 밑에 적혀있는 숫자가 당첨 금액입니다. 엇, 뭐야? 나 당첨된거야? 이제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윗 장의 복권도 빠르게 긁어나간다. 하지만 결국은 꽝이다.

 그래도 4유로가 당첨되었다. 그럼에도 2유로 짜리 긁는 복권을 2장 샀으니 또이또이다. 참 웃긴건 한 장 살까 두 장 살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두 장을 사서 당첨되었다. 나는 4유로를 주고 다시 4유로를 받았다. 내가 모른 채 인생은 이렇게 짜여져있는건가 괜히 혼자 허탈해하며 집으로 걸어간다. 아직 로또 하나가 남아있지만 하루 내내 가득했던 속상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나는 왜 중앙역에 내려 로또를 샀을까. 어떤 것으로부터의 구원이 절실했을까.


 오늘의 참을 수 없는 권태는 나를 우울하게 했다.



[숲] 아이패드드로잉 2020.1.21 @find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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