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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Feb 27. 2021

성공적인 부캐

희망사항

브런치에는 딱 한 달 전에 글을 썼더라. 어두침침하고 쌀쌀한 눈과 비가 섞인 하루로 기억한다.

권태로움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감정인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조금씩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대 특성상 온라인 수업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학교에서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없어서 오는 답답함과 코로나 락다운 상황에 밖에 나가는 활동이라고는 주 3일 먼 거리에 있는, 매일매일 일이 많은 회사 밖에 없으니 권태롭고 또 권태로웠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버거운 일일까 싶었다. 아님 사람의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는 일은 어떻게든 영혼에 타격을 주는 것일까? 

학교 다니면서 생활비 벌려고 어쩌다 들어간 회사는 대기업의 인턴 자리였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한낱 일개 인턴 알바일 뿐인데 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또한 잘 모르는 영역이다 보니 실수도 종종 있다.(하라는 것만 하면 되는디) 나는 일이 끝나야 집에 가서 정말 내 일이 시작되는데, 종일 모니터만 바라봐 따갑고 피로한 눈으로 내 작업을 하려니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긍정긍정의 회로를 돌려 생각하면 이 일을 하고부터 내가 원하는 삶과 가고 싶은 방향이 끊임없이 상기된다는 것이다.   


 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엇이 되었든 나는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부캐를 만들기로 했다. *부캐 :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하는 부 캐릭터. (보조 캐릭터라고나 할까) 아마도 나는 회화로 졸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현실이든 평생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의 이상향은 매일같이 작업실에 나가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글을 쓰며 작업물을 한데 모아 틈틈이 혹은 때때로 전시를 하며 보내는 삶이다. 예술계에서 운이 좋은 사람은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삶을 위하여 투쟁하는 삶이다. (이건 딴 이야기지만 이러한 연유로 프로그램 '싱어게인'을 보며 자주 울었다.) 나는 일단 일러스트 계정을 팠다. 아무도 나인 줄 모르게. 


 나는 일러스트나 디자인, 그리고 회화의 영역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단 작업을 만들어내기까지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림의 방향성과 주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뻗어나간다. 나는 끊임없이 그리고 만들어낼 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방향성이 자신에게 납득이 가야겠지. 아니면 작업의 일련의 과정이 주제의 근원으로 향하는 기록이던지 말이다. 그렇게 작업물을 내어놓았을 때 역설적이게도 그 지점에서 타인과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의 브런치 소개글 중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요, 무너지기 않기 위해 글을 써요. 라고 쓴 부분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모든 과정은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한다. 나는 내가 나로 온전히 섰을 때 타인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맞닿는 교차지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뭉크의 그림을 직접 보고 뭉크 그 자체 존재에서 전율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회화)작업의 특성상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는 현실의 괴리에 허공에 붕 뜬 느낌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렇게 종종 더 이상 이렇게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이 잦아진다.  물론 자기 자신을 잘 노출시키고 (또 보여지기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마케팅에도 훌륭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친구들도 왕왕 있다. 나도 좀 살아보려고 나름의 시도를 해봤지만 나는 그림이 아닌 나 자체를 타인에게 드러내 놓는 일에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이었고, 내게 정말 중요한 건 매일매일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주어지는가 였다. 회사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기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 반해 일러스트나 디자인은 뭐랄까. 나만의 것이 아닌_나의 스타일이 50퍼센트라면 나머지 50퍼센트는 보는 사람의 즐거움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_끊임없이 실생활에서 보다 직접적으로(회화에 비해)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창작자 고유의 그림 스타일, 컨셉을 굳혀나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생긴다. 이미지는 그렇게 사람들의 반응과 호응을 얻으며 살아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등 삶의 곳곳히 파고들어 있어, 이미지를 창작하는 노동값에 대한 경제적 수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껄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안의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아주 개인적이지만 필수적인 일이라, 종종 판매를 하게 되거나 공모전에 그림 가격을 써야 할 때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혼자 판단하고 값을 매긴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하며 이미지 자체만의 소비가 아닌 여러 가지 협업을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경제적으로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어떤 분야가 되었건 자신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곳, 속하지 않는 곳에 있으면 현타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일단 인스타그램에 닉네임(shinibu/시니부)을 만들어 일러스트를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100일 정도는 일러스트 그림 스타일도 굳힐 겸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1일 1 그림을 하고 있다. 2월 15일에 시작해 16개의 그림을 그렸다. 그냥 그때 그때의 마음들, 하루의 일기처럼 올리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스케치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맘껏 써서 자기 전 일기 쓰는 마음으로 쓱쓱 그려서 업로드를 한다.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성공적인 부캐가 되기를 희망하며!





매일의 그림과 이야기를 브런치 이웃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인스타 계정에 올렸던 그림과 이야기들 몇 개를 올립니다. :)

2021.2.15 퇴근길에 @shinibu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오늘 퇴근길에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무가 보였다,

봄이 훌쩍 다가와 생기를 가득 머금은 나무 한 그루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설레임과 평온한 따뜻함이 일렁였다. 집에 돌아와 나는 그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뒤에는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 릴케의 시 한 구절을 적어 넣었다.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맞이하라

길을 걷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

나는 그동안 삶을 굳이 이해해보려고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만난 강아지 @shinibu

[귀여운 순간들]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귀여운 강아지가 무지 귀엽게 앉아 있었을 때



일요일 따사로운 산책길 @shinibu

2021년 2월 21일

[일요일 오후 산책]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따스했다.

집에만 있으면 후회할 것 같아 간단히 자켓을 걸치고 길을 나섰다. 

너무 멀리 가는 건 부담스럽고, 이 날씨에는 어디든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집 근처의 새로운 곳을 탐색하기로 했다. 집 근처 트램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가보지 못했던 길을 남자친구와 계속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숲이 나왔다. 우리는 숲 속을 내내 찬찬히 걸었다. 

따사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긴 나무들 사이의 파란 하늘에 행복해했다.




https://www.instagram.com/shinibu_

제 인스타 일러스트 계정입니다! :) 매일매일 그 날의 그림이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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