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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Apr 27. 2021

영원 안의 우리

2021.04.26

예전 집 근처의 s-Bahn 정거장, Offenbach Ost



시간은 흐르는 걸까?

0에서 시작해서 숫자들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즈음에 와있는 걸까? 흐르고 흐름에 따라 우리는 점점 거세지는 파도에 엉거주춤하다 함께 떠밀려가는 걸까? 끝도 없는 지평선 위에 우리는 둥둥 떠있을까.


 유독 집에 가기 싫은 날 역에서 집 가는 기차를 기다리다 한 대 두 대 그렇게 여러 대를 보내고는 생각했다. 기차는 첫 정거장인 역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역까지 달리고 달리다 다시 처음 역부터 마지막 정거장으로 끊임없이 흐르고 흐른다. 캄캄한 터널로부터 환희하듯 빛을 뿜어내며 세차게 역으로 진입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모였다 이내 흩어지며 같은 트랙을 돌고 또 돈다. 

살랑한 바람이 불고 꽃향이 만발하는 봄도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지나치고 있다. 하루하루 미세히 바람과 습도, 색깔은 변한다. 어느새 공기에 물기 가득 후덥지근한 초록의 여름이 올 테고 이 더위가 지긋지긋해질 참에 조금씩 조금씩 차가워지는 새벽 공기가 가을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다시 캄캄하고 추운 긴 겨울을 보내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설레는 봄이 다시금 영화처럼 나타나겠지. 나는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끝을 향해 흐르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끝의 의미는 무엇일까? 끝과 시작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마침표에서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하나의 호흡이 끝나고 그다음 호흡을 위해 숨을 다시 들이마시는 것처럼.

우리는 광활한 영원의 기찻길 위에서 무한한 존재로 계속해서 걷고 있다.


가끔 우리 고양이 츄츄와 보리가 마음이 저릿할 정도로 많이 많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수많은 교차로 위에서 우리가 우연히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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